사랑하는 당신에게
김형구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황혼이혼이 유행이라지만 이 말을 하기까지 무척 힘이 들었소.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소. 이 일로 아이들과 가족에게 닥칠 어려움이 얼마나 클는지. 하지만 결심했어요. 헤어지는 마당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는 내 자신이 우습구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일찌감치 당신 칭찬을 하곤 했죠. 그대를 무척 좋아했어요.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내어 당신을 사귀고 사랑할 수 있었죠. 처음 당신을 품에 안던 날, 얼마나 가슴이 떨리고 설렜는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어요. 그 뒤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새벽 출근에 점심을 거르기도 하고, 밤잠을 설친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요. 그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먼 길을 갔다가 폭설로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었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그대 몸을 어루만지며 보듬던 밤에는 기분에 취해 술도 한 잔 했던 기억. 세월이 흐르고 사랑도 무르익어 행복하고 모든 것이 풍요로웠죠.
그러나 행복도 잠시.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지. 그대가 결별을 선언했을 때 세상의 끝을 보는 듯 했어요.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살던 집이 경매에 넘겨지기도 했었죠. 그래도 당신에 대한 사랑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멀리 떠나버린 당신. 퀭한 눈을 하고 찾아 헤맸던 수많은 시간. 정성을 다했습니다. 친구도 멀리했고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모든 것을 접었습니다.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살았죠. 휴일은 잊은 지 오래였습니다. 그 덕일까요.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당신은 다시 내 품에 안겼습니다. 아주 작지만 여유와 행복도 찾았습니다. 어쩌면 지난 세월이 힘들었기에 그리 느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도 크고, 긴장이 풀려서일까. 얼마 전부터 당신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식기 시작했어요. 당신보다 다시 그림 그리기, 글쓰기가 좋아졌어요. 생각 없이 거니는 것이 즐겁고 들에 핀 꽃이 아름답게 다가오네요. 당신을 보듬거나 헤아려 보는 일도 흥이 나지 않는 나를 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꼼꼼하게 해오던 당신에 대한 사랑메모, 그대를 향한 일기쓰기도 이제 그만둔 지 오래입니다.
당신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그동안 당신에게 쏟았던 사랑, 정성, 열정을 다른 곳에 썼다면 무엇이든 일가를 이루지 않았을까. 지나보니 당신은 나의 사랑만 요구했지 베푸는 데에는 인색했어요. 그대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죠. 그들은 지금도 당신을 흠모합니다. 당신은 그걸 즐기는 것 같아요. 가끔 나에게 보내주는 작은 미소만으로도 행복이라 믿으며 참았어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맘껏 품지 못하는 나는 아주 작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늘 괴로웠죠. 이젠 벗어나고 싶네요.
주변에선 극구 말립니다.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기 힘들다고. 고생스러울 거라고.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건 그대만 생각하다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해보고 사라지는 삶입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과 헤어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랍니다. 더 이상 당신의 굴레 속에 있고 싶지 않을 뿐이지요. 40여 년이면 서로 사랑하며 살 만큼 산 것 아닐까요? 헤어져도 아주 잊고 살지는 맙시다. 잊히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 하더군요.
머리도 희끗해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요. 당신에게 쏟았던 열정을 이제 그만 거두고 싶네요.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
이 한마디가 진심입니다. 헤어짐은 누구에게나 오는 법, 너무 슬퍼하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당신 이름을 조용히 불러 봅니다.
“안녕! 돈 많이 mo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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