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수필

최후의 만찬

칡뫼 2016. 3. 6. 20:22

최후의 만찬

 

축 생

초대합니다.

늘 저를 사랑해 주셨던 가족, 친구, 선배, 후배 여러분~!

제가 열심히 살다가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먼저 현생을 마무리 하고

환생을 위해 떠나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촐한 자리이오나 오셔서

저의 아름다운 생의 마무리를 축하해 주신다면 나름 행복하겠습니다.

장소 : ㅇㅇㅇ

일시 : ㅇㅇㅇㅇ

ㅇㅇㅇ 올림

 

 

    노트에 연필로 꼭꼭 눌러 쓴 편지였다. 이 편지를 나에게 카톡 사진으로 보내 준 사람은 문화강좌에서 만나 형 아우하며 지내는 동생 임경일이다. 그는 문화계의 마당발로 일찌감치 많은 예술가들과 인연을 만들며 살고 있다. 역시 지인 이야기였다. 잘 아는 후배가 죽음을 앞두고 자기를 초대했다는 내용이었다. 병이 깊어 호스피스병동에 있다가 몇 시간 외출 허가를 받아 어렵게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해 주었다. 괴롭지만 생의 마지막 잔치에 참석하기로 하고 후배가 병상에서라도 손에 잡히면 읽어 보라고 책 몇 권을 샀다고. 그 답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날 저녁 날아온 사진에는 ‘축 생’ 이란 글씨 아래 '아름다운 마무리 ㅇㅇㅇ박사 만찬'이란 글씨가 새겨진 자그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잔치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연미복을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 그리고 오른쪽에는 악사들이 현악사중주를 연주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사진에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여럿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웃고 있었다. 웃으라고 권했는지 주변인들도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주인공은 현수막에 써진 글씨처럼 죽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스스로 ‘축 생’이라고 수 없이 마음속으로 다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 웃음 뒤에 가슴 깊이 흐르는 눈물이 얼마였을까. 50 중반 나이에 못 이길 병에 대한 원망,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친구나 선후배들과의 수많은 추억. 그 많은 인연을 한 번에 끊어내야 하는 슬픔.

     그 아래로 주인공과 아우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 사진이 올라왔다. 생의 마지막 기념사진이었다. 마무리 사진은 애도하는 마음의 표시로 올린 스님들이 합장하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오신 분들에게 건강하시라고 은수저 두 벌씩 선물해 주는 것으로 만찬이 끝났다며 소식은 맺어졌다.

    바쁘게 보낸 연말이라 까맣게 잊고 지낸 어느 날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형, 후배가 멀리 떠났어요. 잘 가라고 작별인사 하러 갑니다.’ 최후의 만찬을 끝내고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삼일 뒤 계룡산 신원사 고왕암에 후배를 안치하고 귀경중이란 문자가 왔다.

     죽음이란 뭘까. 슬프기만 한 걸까. 고인은 또 다른 생을 맞는 기쁨으로 진정 죽음을 마주한 것일까. 생과 사는 하나의 고리,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일까. 살아서 죽음을 예고하고 작별인사를 나누던 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고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삼가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좋은 곳에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

 

 

 

 

 

 

 

 

                     

                                           2016년 <계간수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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