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다녀와서

그림이야기-----독끄--

칡뫼 2009. 7. 7. 19:03

 

 

어릴때 우리 집에는 개가 있었다.

이름이 "독끄"였는데 항상 점잖게 대문간에 앉아 집을 지켰다. 그러다가 우리 식구가 나타나거나 내가 학교갔다 올때면 여지없이 알고 일어나 반갑게 꼬리치던 "독끄",너무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낸터라 서로 눈빛만으로도 뭐든지 알아챘고 말귀도 알아들었던 "독끄", "독끄"란 이름이 영어의 도그 (dog) 발음을 그대로 부른 이름이란 것을 안것은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고 나서였다.

   개를 부를때 " 얼레 레레레레 "하고 불렀는데  아랫입술을 당겨 아랫니를 덮고 혓바닥을 아래입술안에 대고 숨을 내쉬면서 혀를 흔들며 내던 소리였다. 이 소리는 안보이던 "독끄"를 슈퍼맨 처럼 항상 내 앞에 나타나게 하여 꼬리를 흔들게 했던 마술피리같은 호출음이었다. 서울로 전학간 뒤에도 방학때 내려오면 언제나 나를 따르며 정말 눈물겹도록 교감했던 "독끄", 겨울방학때에는 토끼잡으러 눈내린 산속을 헤매던 추억이 있고 가끔은 쥐도 잡아 영특함을 뽐내던 개였다.

   어느해인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락이며 조선시대 회화를 공부하다 영모화(翎毛畵)에 깊이 감명받았던 기억이 있고 특히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뿐 아니라  변상벽의 "묘작도" 남리 김두량의 "견도" 이암의 동화같은 "모견도"  모두 특색이 있고 묘사의 적확함이 가히 천상의 손놀림인지라 부러워 했었다. 한국화는 특히 인물초상화를 빼고는 거의 밑그림 없이 일필휘지로 그리니 사물을 파악하는 눈매는 화가만의 타고난 재능 아니던가 !

   그 뒤 군을 제대하고 집에서 사친첩을 정리하다 아주 작은사진에서 우리 "독끄"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그 즉시 커다란 그림 약 80호를 그렸다. 감히 나도 선대화가와  겁없이 대적할만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때 그린  그림이 우리집 개 "독끄"였다 .그 분위기를 이어 노란고양이 그림도 그렸는데 그 그림은 아이들이 무서워해 지금까지 다락에 숨어있다.  생각해보니 "독끄"를 일필휘지로 정신없이 그렸던 생각이 난다

"독끄"는 아주 조그맣게 사진에 있는 포즈대로 그렸으나 사실 개의 묘사는 전적으로 나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독끄"와 지낸 세월은 나로 하여금 과거로 나를 이끌었으며 개는 생생하게 내 머리속에서 살아 나왔다. 그때 대문까지 그려넣은 구도로 그림은 완성했으나 , 역시 아니다 싶고,창피하고 감히 선대화가와 견주려 한 나자신 무모했음을 알고는 버리려고 그림을 뜯어냈다. 그림상단부를 뜯고 하단부마저 뜯으려다  "독끄"를 보고는 차마 불살라 버릴 수 없어 잘라내어 보관했었다. 그 뒤 어느해엔가 표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 달력 몇장을 넘기다 우연히 초복 중복글씨에 갑자기 "독끄"가 떠올랐다 . 다락에 올라가 액자를 찿았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빛바랜 액자가 있었다. 유리를 닦아내자 "독끄"는 먼저 나를 알아보고 다시 나에게 선한눈빛을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독끄"는 대문간 앞에서 의젖하게 앉아 30여년을 나도 모르는 사이 고향집을 지키며 충견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서야 그것을 알았으니 나도 참 무심한 사람이었다. 다시 액자를 손봐 새롭게 단장하여 그동안의 무심한 세월을 보상해야겠다. 이 "독끄"그림은 작품으로서는 높낮이가 있을 수 있으나 나의 어린시절 추억이 있어 내 곁에 두게되는 몇개 안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될것이다. 몸에 좋다고 먹으라는 견육도 아직까지 안먹고 버틴것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내 뇌리속에 있던 영원한 나의친구 "독끄" 때문 아니었나 싶다.

 

 

 

 

 

 

 

 

                                                 1981년작          화선지에 수묵담채              칡뫼

 

 

                           참고사항   

 

                       영모화 (翎毛畵) :

                       동양화(한국화)에서 원래는 새그림을 지칭했으나 나중에 동물그림도 포함시키는 광의의 장르가 됐습니다

                       조선시대 알만한 화가는 모두 영모화에 특출났으나 그중에서도 이암,김두량,심사정,김홍도,변상벽등이

                       좋은 작품을 남겨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