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강릉을 다녀와서
강릉에 가기로 했다. 가슴이 설렜다 .
여행의 즐거움은 뭘까 잠시 생각해본다
-낯선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그 호기심을 채우려는 행위,
그에따른 설레는 마음, 뭔가 내 몸에 부족한 그 무엇이 채워질것 같은 기대감,
거기에 양념으로 약간의 두려움까지 내재되어 있는 매력적인 것이 여행 아닐까-
이번 여행의 종착지 강릉은 다른 여행과 달리 경치를 구경하고 음식을 먹는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려 낯선 풍광을 만나러 가는것도 아니고, 야생화를 만나려 산을 찿는것도 아니며,
나의 정체성을 찿으려 우리의 땅 하늘 바다를 찿는것도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었다 . 그것도 한번도 만난적 없는 처음 보는 낯선영혼을---
그 어느때보다 설렘이 강했다.
밤8시 지하철 9호선을 타려고 집을 나섰다. 밤 9시50분 청량리발 영동선 기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청량리에 도착해 기차표를 만지작거린다 .
이 표는 아들이 구해줬다 . 일찌감치 예약을 하려했으나 이미 표는 매진이었다
정동진이다 태백이다 겨울바다다 눈꽃여행이다 설이 지났건만 영동태백선은 항상 매진이다.
해서 입석뿐이 남아 있지 않아 직접 역에서 표를 구해야했다 .
아들을 시켰다 '사와라 ' 하고 아비로서 첫번째 사회생활 임무를 준 것이다 .
그전부터 내성적인 지 엄마를 닮은 막내아들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고교시절 3년을 책상과 집 학교 간혹 학원을 오가는 일이 전부인 철부지였다 .
그래서 내심 일을 시킨게 기차표 사오기였다.
헌데 10시 40분발 기차 입석이라도 사오라 했더니 9시 50분 좌석을 사다 주는게 아닌가
아빠가 6시간이상 서서 가는게 안스러워 1시간 앞선 시간 좌석을 확인하곤 사온거다 기특하게도-
별거 아닌 기차표 한장이 아들의 융통성을 확인시켜줘 나를 기쁘게 했다.
실은 내가 만나려는 사람이 아침 6시경에 강릉역에 올수있는 사람이라 내가 새벽 5시에 도착해도
1시간정도 추운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걸 안스러워했던 터였다
9시50분 열차면 새벽4시 도착이니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서서가느니 대합실에서 동계올림픽 소식보며 앉아서 기다리는게 낫지싶다 하고 아들도 생각해 사온거다
제 앞 길 못가리는 어린애로 봤더니 그동안 많이 컸구나--애비는 이렇게 기차표한장에 감동먹는 철부지 아빠다
무궁화호 1661호 열차를 탔다. 밖은 이미 어둠이 짙었다 .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다.
의외로 기차가 편하고 넓다 .카페열차칸도 있고 케티엑스 보다도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 고교시절 방학때 무전여행 갔다 돌아오던 기차
지쳐 먹을거라곤 주문진에서 쌀과 바꿔가지고 온 오징어 몇마리 턱이 아플정도로 먹었던 기억,
그뒤 고래사냥 노래따라 피서를 동해안으로 가던 콩나물기차, 통기타에 야외전축을 들고 흥분의 동해여행,
그림에 뜻을둔 뒤 전국 스케치여행 때 들렀던 촛대바위,대포항,어달리포구, 그 뒤로도 결혼후 피서여행,
그리고 또--- 생각이 가물거린다.
잠시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자 만나고자 하는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미리 한 두번 통화했던 사이라 첫인상은 목소리가 굵고 남성적인 진솔함이 묻어나는 소리인상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진짜 호기심은 카페에 올린 그의 글을 통해 영혼이 무척 서글프고 쓸쓸한 사람이며
또 한편 너무 따듯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란것이 내가 그에게 갖는 인상의 전부였다.
문학카페에 올린글에서 -택시기사를 할때 비가 억수로 오던날 거들떠 보지않던 장애인을 태워주고 성심껏 대했는데
손님이 사례를 하려했으나 그냥 사라져 손님이 차번호를 적어 강릉시청에 감사편지를 올려 감사장 받았던 일 '
노인이 택시비 천원지폐와 만원지폐 잘못낸 걸 일부러 쫒아가 되돌려 줬던 일 그분이 오늘 내가 생불 만났소했단다,
그 외 몽골 유학생이 음식점을 찿아와 밥먹을 돈없어하는 걸 딱히여겨 음식 만들어 먹여주던 일 ,
그일로 그 여학생이 자기 아빠 닮았다며 눈물흘렸다는 일화 등의 글로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그를 만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다름아닌 인생에 대한 허무,회한, 서러움 서글픔 ,지난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글 때문이었다
'외로움에 나홀로 새벽을 서성인다" "배고픈 철새 그 어딘가 남쪽나라로 훨훨 날아가 버리겠지"
"그대 떠난 벤취에 고독이 가득하다" "어젯밤 한잔술 새벽 잠깨어-"
"술취한 나그네 갈짓자 걸음에 태백의 새벽은 열리는가-에헤야 디야-" "들리나요 허망한 나의 노래가-"
"술잔에 담긴 아름다운 그대여 연기속에 멀어져간 나의 님이여 한잔술에 먼하늘 바라보며
쾡한 내 눈가엔 서러운 눈물만 흐르는데-" 등- 그의 글은 나에게 깊이 박혔다
특별이 화려하거나 유려한 문체는 아니었지만 계속되어 울리는 마음속 슬픈노래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
거기에는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 만나지 않고는 못배길 그 무엇이 나를 이끌었다
그뒤 그의 글 시장골목에서 막걸리 먹는 묘사에 나도 한잔하고 싶다 했더니
강릉으로 언제 한번 와 탁사발 한잔하자는 응수에 덜썩 마음이 동했던 터였다.
이번 여행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잠을 청한다, 자다 깨어나기를 서너번
승객의 절반이 태백에서 사라지고 다시 정동진에서 그 반이상이 내렸다 .드디어 강릉역이 보였다 .
전화로 내가 4시경에 도착하는걸 안 그는 전화로 나를 내곡동 목욕사우나로 안내했다
거기서 따듯하게 휴게실에서 쉬고 있으면 5시 50분경 오겠단다.
강릉역에 정확히 새벽4시5분경에 도착했다 ,정겹게 역은 예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남았다. 사우나가 새벽 5시에 문을 연다고 알려준 터라 4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여행객의 두리번심정이 발동했다 역광장에 나가 들러보고 사진도 찍고 시간을 보냈다
항상 역마다 있는 사람 , 역을 집삼아 사는 이, 강릉역에도 어김없이 한분이 계셨다
전보다 수는 줄었지만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사람사는 풍경이다.
어쩜 선진국에 더많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 낙오자가 많은법, 저 사람은 가슴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까 ,
계속되는 궁금증이 나를 흔들었지만 모른체하고 약속시간을 쫓아갈수 밖에 없었다 .
사우나에서 잠시 세수를 하고 기다리자 그가 나타났다
"칡뫼선생 계십니까"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당당한 몸짓에 눌러쓴 모자 기골의 단단함이 강원도가 고향일까, 역시 내 예감이 적중했다.
듣기엔 사투리가 슬쩍 밴 말투지만 그 솔직함과 힘있는 태도는 듬직한 바위덩어리 같은 인상이었다
"반갑습니다" 잠시 악수를 굳게 나누고 십년지기 이상의 반가움에 둘 사이에는 벽은 이미 없었다
휴게실에서 뭐랄거도 없이 살아온 이야기가 이어졌고 우린 같이 경험한 인생이 어찌 그리 같을까 바로 친구가 되었다
나이도 동갑이고 사업실패의 경험도 같고 닮은데가 너무 많았다.
다시 자리를 옮겨 이른아침이지만 그의 글에 등장하는 강릉중앙시장 국밥집을 찿았다
국밥과 술이 이어졌고 서로 벙어리 말문 열린 듯 이야기가 계속됐다
어느새 그와 나는 서로에게 안주가 되어 있었다. 그 덕인지 술이 참 달았다
국밥이 식자 주방으로 들고가 데어 오려는 태도에 바쁜 주인장이 정색한다 .평소 잘 아는사이란다
그의 삶의 태도가 엿보였다 실질적이고 겸손하고 낮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 왔다
나자신 아엠에프로 파산했다면 그는 태풍 매미인가 로사로 파산했단다. 생각이 났다 .
하늘에 구멍난 듯 쏟아진 비 피해 전국에서 구호물결이 온통 강릉으로 향하던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 학창시절 무역을 전공했던 그가 사업상 수입해 쌓아놨던 엄청난 큰 재화를 한순간에 진흙더미에 버렸단다 .
그 뒤의 재기를 위한 몸부림 그리고 결국 파산, 상실감과 회한 뒤이어 닥친 후폭풍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안다.
재화는 물론이고 인간관계의 해체 따가운 시선 그보다 더 무서운건 자신에 대한 자신의 함락 ,그 누가 알랴
그 허망한 힘든 세월에 몸을 가누고 일어서려 백두대간을 오르고 선자령을 찿았구나.
그 고통은 아직 현재 진행형인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시가 글이 왠지 내가 끌렸구나 어찌 저리 상처의 흔적이 나와 같을까
안해본 일이 없었단다 글에서 짐작했듯이 택시기사,요리사, 3년여 캐나다이민생활, 경비일 까지--
그는 색소폰을 부는 연주자이기도 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
난 안다 삶의 절박이 극에 달해 한인간을 갈래길에 서게 했을때 택할수 있는것
무엇이든지 하느냐 , 모든것을 포기하느냐 하는 생의 기로에 서 봤을거다
나는 그를 위로하기 보다 내가 위로받고 있었다. 그의 아픔이 나에게 공명되어 내가 다시 떨리고 슬퍼졌다.
자리를 옮겼다 .친구인 기사를 불러 선자령 발치로 향했다 나를 위한 배려였다.
그가 힘들때 백두대간에 올라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받던 산행의 초입이었다.
산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 있었다. 초입 깔끔한 집에서 시장에서 사온 빈대떡에 묵무침으로 막걸리를 마신다.
못다한 이야기가 이어졌으며 또다시 서로에게 말의 꼬투리를 터뜨려 준 격이되었다.
-사람은 자기 알아주는 맛에 산다 태어날때부터 부모의 눈맞춤에 익숙한 우리는 벌써 자기 알아주는 단맛을 일찌감치 익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장큰 고통은 왕따아닌가 -알아주지 않는걸 가장 싫어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말을하건 그 이면 저밑바닥에는 자신을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숨어있다-
우린 서로 어디에도 털어 놓을수 없는 가슴속 이야기를 서로의 필요에 의해 주고 받으며 취해가고 있었다 .
서로 알아주고 있었던거다 .그는 소원이 자식들 학교 끝나면 절에 들어가 산사 스님과 찿아오는 중생들 밥해주고 싶단다
요리사 자격증이 두개나 되니 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허허 웃는다, 마음을 비울줄 알고 있었다 ,
" 저 보시라우" 하고 그동안 벗지 않던 모자를 벗으니 더 환하고 아름다운 스님이 있지 않은가
택시비 돌려 받았던 할머니 말씀대로 허허웃는 생불이 있었다.
다시 대관령에 올라 눈 구경하고 내려오며 헤어지기로 했다 .우린 취해 더 이상은 안될것 같은 서로의 배려였다
친구는 밤근무를 해야했고 나도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그전에 서울서 준비해온 문인화 한점과 농장에서 생산한 보관이 용이한 훈제오리고기를 선물로 주고 일어났다
강릉터미널에서 표를 예약했다 . 그런데 난 일부러 시간을 늦춰 잡고 바다로 향했다.
왠지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경포호를 들러 친구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슬퍼우는 갈대도 보고 싶어 졌고
친구에게 울음소리로 들리던 파도소리도 듣고 싶었다
경포호를 들러 산책하고 바다로 나가니 푸르디 푸른 바다가 있었다
너무나 푸르러서 눈이 시렸다 .잠시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니 환한 기분도 잠시 울컥 눈에서 눈물이 났다.
술에 취해서 인지, 예전 파산시절 막막하던 내설움에 취해서인지 ,친구의 삶이 슬픈건지 괜시리 눈물이 났다.
바다가 있었다 모든지 다 받아주는 바다가---내 앞에 보란듯이 있었다
"아저씨 사진좀 찍어주세요 " 아름다운 젊은 연인이다.
샤터를 누르니 연사 샷다음이 세번 울린다 . '찰칵찰칵찰칵'
예쁘게 찍으려 명암틀린 세장을 뽑아 고르려는 심사다
인생도 이리저리 살아 골라보면 어떨까-그런데 아쉽게도 인생은 단 한컷의 증명사진이다.
그래서 아쉬움도 있고 슬픔도 있고 예술이 존재한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
한번 사는인생 곱게 사느니 거친 옹기같은 삶도 멋지지 않은가
친구여 잘 지내게-봄에 야생화 피면 또 한번 만나 봄세 -못다한 속이야기 마저 나눔세-
고속버스에 몸을 누이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그 뒤
그를 만난 긴 여운에 한동안 그림뿐만 아니라 글쓰기 사진찍기 야생화구경도 할수 없었다
아마 내 과거의 상처가 덧나서 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