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말과 생각 그리고 이야기

칡뫼 2022. 6. 9. 22:08

'그림은 왜 그리나?' 이 말 또한 '그림이 뭘까?' 만큼 자주 하던 질문이다. 여러 가지 답이 있을 것이다. 일단 내 이야기를 해본다. 그림 그리는 행위는 즐겁다. 손 끝에서 엉뚱한 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낙서광들의 낙서도 아마 같은 희열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다음은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어린 시절 대상을 비슷하게 혹은 예쁘게 그리면 칭찬을 받았다. 뭐든 닮게 그리는 것에 자신 있던 나에게 그림은 자랑거리였다.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었고 일종의 존재 증명이었다. 그런데 지나보니 그린다고 다 그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시 '그림이 뭘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유명화가들을 배우고 미술사 등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림이 어려웠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미 다 그려져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그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림의 시작점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몽고 초원의 암각화, 알타미라 동굴 벽화, 스페인 라스코 벽화 등 원시 미술에 혹시 답이 있지 않을까. 논리로 오염되지 않은 선사시대 작품에는 미술의 원형질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느 곳보다 완벽한 선사시대 미술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바로 1971년에 발견된 반구대와 천전리 등 암각화들이다. 학문적인 해석에 앞서 화가 입장에서 그림을 보기로 한다. 당시 화가들의 마음과 생각을 유추함으로써 진행되는 나의 작품과 앞으로의 작업에 힘이 되기를 내심 바라는 것이다.

그곳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천전리 그림은 아직 해석이 안 되는 형상이 많지만 특히 반구대 작품은 나름 해석도 가능하고 그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묘사의 구체성 때문이다. 하지만 반구대 그림을 새긴 작가는 묘사가 목적이 아니었다. 즉 고래를 그린 것이 아니라 '고래는 우리들의 식량이며 잡는 방법은 이렇고 길이 보전해야 할 삶이며 앞으로도 영원하면 좋겠다.'를 그렸던 것이다. 그림이 곧 말과 생각이고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