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종자에 대하여
작업실 마당에 쏟아진 낙엽을 쓸다 보니 밤송이가 몇 개 보인다. 어릴 적 고향집 뒤에는 밤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다. 가을이면 밤을 송이째 따 가마니에 담아 광에 보관했었다.
정도껏 시간이 지나면 밤송이가 힘을 잃어 발로 밟기만 해도 밤톨이 빠져나왔다. 제사상 생률로 쓰기도 했고 아궁이에 넣어 군밤도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밤알을 챙기다 보면 알이 세 개 고르게 들어있는 것과 가운데는 죽정이고 좌우에만 반달처럼 박혀있는 것 혹은 가운데만 크게 자리 잡고 좌우가 쭉정이인 것도 있다.
왜 고루 알이 맺지 않고 쭉정이가 생겼을까.
아마 송이에 공급된 영양분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쭉정이 씨앗은 스스로 씨 맺기를 접은 것이 아닐까. 예전에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여러 식구 중에 한 명만 공부시킨 예와 같다.
가능성이 큰 너라도 밤나무가 되어라. 함께 태어난 밤톨의 고귀한 희생인 것이다.
돌려 생각해보자. 석박사를 비롯해 판검사 그리고 성공한 기업인 언론인 등등이 소위 출세했다는 나라의 엘리트들이다. 그중에는 정치인도 있다. 과연 그들은 스스로의 힘 만으로 성장한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가족을 비롯해 어쩜 주변의 보이지 않는 많은 희생이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 또한 막중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들의 모습을 보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감도 없어 보이고 하나같이 비겁하기까지 하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심한 실망을 하게 되는데
국가와 국민이란 단어는 구호로만 쓰인 지 오래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욕심에만 매몰되어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 적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소위 똑똑하다는 자들이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산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좋은 씨앗은 썩어 새싹의 거름이 되지만 썩은 씨앗은 아예 싹을 틔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