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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집에 가자

칡뫼 2023. 2. 26. 16:47


인간이 만든 가장 과학적이고 탁월한 안료가
유화나 아크릴 물감이다.
근데 난 단 한 번도 그것으로 작업해 본 적이 없다.
배우지도 못했고 기름 특유의 번들거림이 싫어서였다. 아크릴릭으로 작업을 하는 주변도 보지만 옮겨가지 못하고 있다.
더 도드라지고 풍부한 질감도 중요하지만 작품은 내용이 아닐까. 분명한 건 동양 전통 재료가 가지는 유화와 또 다른 맛도 있는 것이니 문제 될 것도 없다.
하지만 원하는 질감을 얻기 위해 수백수천의 붓질을 할 때는 유화라면 덮어 칠하면 그만인데 할 때가 있다.
더군다나 구상서부터 비울 자리는 비우고 머리로 정도껏 정리한 다음 시작해야 한다. 웬만한 채색기법이 아니면 덮어 다른 색으로 씌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붓질따라 하나하나 축적되고 무게가 실리고 질감이 살아나는 건 인생과 같다.
그나저나 오늘 많이 그렸다. 아직까지는 원하는 방향으로 작품이 진행되니 기분도 좋다.
더 그리고 싶지만 만화책의 다음 편으로 계속처럼 그리고 싶은 기분을 살리고 물러나야 한다.
나의 작업방식이다. 그래야 애인 만나듯 다음번 화판을 대할 때 기분이 삼삼 한 것이다.
집에서는 어제 냉장고에 남겨 놓은 막걸리 반 병이 빨리 비워달라고 보챈다.
이만 가자 퇴청이다.


칡뫼 퇴청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