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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뱁새 둥지

칡뫼 2023. 11. 5. 12:46


작업실 주변을 둘러본다.
화목 난로에 쓸 나무와 몇 해 전 태풍으로 넘어진 소나무 가지도 정리할 참이다. 건물 뒤로 돌아 걷는데
텅 빈 새 둥지가 있다.
키 작은 산딸기 덤불에 지은 집이다. 가만 보니 가느다란 풀과 실가지를 엮은 것이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온몸으로 지은 집이다.
어느 예술품이 이보다 진실될까.
모습을 보니 뱁새집이다.
황새처럼 높은 곳을 날지 못한 죄일까? 그들의 둥지는 언제나 흙바닥과 가깝다. 새들에게 땅바닥이란 늘
조심스럽고 위험한 곳이다.
부재를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
없는 듯 죽은 듯 살아야한다.
감추고 살아야 하니 뱁새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몸색깔도 풀잎과 흙빛을 닮았다.
둥지를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제대로 자식은 키웠을까?
식구는 얼마나 늘었을까? 요즘 뱀은 드물지만 늘어난 작업실 주변 고양이가 마음에 걸린다.
아뿔싸! 지난 늦여름 골목에 날리던 연갈색 새털! 혹시 이 집 오목눈이?
설마. 아!
빈둥지가 갑자기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