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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다는 것

칡뫼 2024. 2. 13. 21:26



          중고등 시절 광화문에 가면 문 뒤에 중앙청이라 불리던 커다란 석조건물이 있었다. 이 건물은 높고 웅장했으나 왠지 어색하고 답답해 보였다. 왜냐하면 돌로 지어 이질적인 데다 앞에 있던 광화문을 초라하게 만들고 궁궐 안에 거만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건물이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 건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중앙박물관 시절에는 전시 구경차 건물 안에 몇 차례 들어가 보았었다. 그때마다 멀리 경복궁과 북악산을 바라보며 이 건물이 없다면 이곳 풍광은 어땠을까? 생각이 들곤 하였다. 그 뒤 우연히 심전 안중식 선생의 작품 '백악춘효'를 보고 탄성을 질렀었다. 작품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없던 광화문 일대가 사진처럼 그려져 있었다. 한참을 작품 앞에 머물렀던 생각이 난다.

       함부로 가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조선총독부 건물은 우리의 살아있던 역사와 전통을 가린 일본의 작품이었다. 경복궁 마당에 낙관 찍듯 날 일日자 모습의 건물을 세워 치욕을 선물했으며 일본에게 굴복한 조선의 존재를 알렸다.
옛 광화문 일대를 지나다니던 백성들은 사라진 광화문과 궁궐을 가로막은 거대한 서양 건축물에 압도됐으며 조선은 갈수록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반대로 총독부 건물은 떠오르는 일본을 숭배하라는 기호였으며 민족혼을 지우는 가림막이었던 것이다.

       무엇을 가린다는 것은 그것이 품고 있는 사태나 사실을 감추는 것이다. 요즘 우리의 언론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잘못된 정보로 판단을 흐리거나
춰서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당장 알 수 있는 쉬운 예가 있다. 명품백을 받은 사건은 불법이 드러났으니 사과는 당연한 것이고 수사가 본질 아닌가? 하지만 어느 순간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 논쟁이 되어버렸다. 불법과 수사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런 프레임 전환에는 늘 언론이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성향상 한쪽이 과표집 된다면 조사 내용은 왜곡된다.
바쁜 일상으로 제목이나 결과만 쉽게 바라보는 대중은 기만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정보로 지탱하는 언론이 감시는커녕 권력과 한 몸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하여 1차 정보 자체도 오염되어 있을 때가 많다. 이제 기자는 단순한 직장인이 된 지 오래다. 그들이 쓰고 흘리는 문장에 공동체의 정의는 사라지고 자본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정보에 올바른 해석과 주석이 필요한 시절이 되었다. 옥석을 가리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국민의 판단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더 이상 0.76%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