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한국말(최봉영)

칡뫼 2024. 4. 25. 10:02

# 묻따풀 학당

⟪한국말이 가진 힘을 살려 쓰는 일⟫

01.
사람들이 한국말을 쓰고 있다. 그들은 한국말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갖가지로 뜻을 주고받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02.
한국말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들이 한국말을 어떻게 배우고 써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젯거리가 될 수 있다.  

03.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한국말을 그냥 되는대로 배우고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한국말을 바르게 차려서 배우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04.
한국말을 그냥 되는대로 배우고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저마다 아무렇게나 배우고 쓰는 한국말을 그냥 그대로 놓아두자고 말한다. 말을 아무렇게나 배우고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 쉽다. 거짓말, 욕설, 부풀린 말 따위로 재미나 이익을 보는 이들은 이런 경향을 갖는다.  

05.
한국말을 바르게 차려서 배우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한국말을 저마다 아무렇게나 배우고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들은 사람들이 말을 법도에 맞게 바르게 차려서 배우고 쓸 수 있게 만들고자 한다. 또렷한 말, 믿음직한 말, 사무치는 말에 이끌리는 이들은 이런 경향을 갖는다.

06.
사람들이 한국말을 바르게 차려서 쓰는 것은 한국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살려서 쓰는 일을 말한다. 그들은 한국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살려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07.
한국말이 가진 말의 힘을 제대로 살려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한국말과 관련하여 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온갖 일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잘잘못을 매긴다. ‘잘 하는 짓’, ‘멍청한 짓’, ‘어리석은 짓’, ‘좋은 짓’, ‘나쁜 짓’이 그것이다.

첫째로 사람들은 누가 한국말의 말소리와 말뜻을 또렷하게 알고서, 한국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살려 쓸 때, 그것을 ‘잘하는 짓’이라고 말한다. 제대로 하는 일의 정도에 따라서 조금 잘하는 짓도 있을 수 있고, 크게 잘하는 짓도 있을 수 있다.  

둘째로 사람들은 누가 한국말의 말소리와 말뜻을 흐릿하게 알고서, 한국말이 가진 힘을 흐릿하게 살려 쓸 때, 그것을 ‘멍청한 짓’이라고 말한다. 멍청하게 하는 일의 정도에 따라서 조금 멍청한 짓도 있을 수 있고, 크게 멍청한 짓도 있을 수 있다.

셋째로 사람들은 누가 한국말의 말소리와 말뜻을 잘못 알고서, 한국말이 가진 힘을 어리석게 잘못  쓸 때, 그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다. 잘못 아는 일의 정도에 따라서 조금 어리석은 짓도 있을 수 있고, 크게 어리석은 짓도 있을 수 있다.  

넷째로 사람들은 누가 한국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살려 쓰도록 도와주는 일을 할 때, 그것을 ‘좋은 짓’이라고 말한다. 돕는 일의 정도에 따라서 조금 좋은 짓도 있을 수 있고, 크게 좋은 짓도 있을 수 있다.  

다섯째로 사람들은 누가 한국말이 가진 힘을 살려 쓰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일을 할 때, 그것을 ‘나쁜 짓’이라고 말한다. 가로막는 일의 정도에 따라서 조금 나쁜 짓도 있을 수 있고, 크게 나쁜 짓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한국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살려 쓰려면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사람들이 한국말에서 볼 수 있는 말소리와 말뜻의 쓰임새, 짜임새, 차림새, 바탕치, 발자취와 같은 것을 깊고 넓게 묻고 따져서 한국말을 올바르게 풀어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한국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살려 쓸 수 있도록 한국말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08.
이제까지 한국의 학자들은 서양사람들이 서양말을 바탕으로 만든 개념이나 이론에 한국말을 우겨넣는 방식으로 한국말의 쓰임새, 짜임새, 차림새, 바탕치, 발자취와 같은 것을 풀어왔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바탕에 놓고서 한국말의 말소리와 말뜻의 쓰임새, 짜임새, 차림새, 바탕치, 발자취와 같은 것을 묻고 따지는 일을 낯설어 하고, 두려워한다. 그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누가 이런 일을 하면 잘못된 일을 하는 것처럼 여긴다.  

09.
21세기로 접어들어 사람들이 만든 인공언어가 크게 힘을 떨치면서 자연언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인공언어가 자연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언어와 인공언어가 함께 돌아가야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언어가 뜨거운 화두로 자리하자, 한국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한국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한국말의 힘을 제대로 살려 쓰는 일에 보탬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한국말을 놓고서 벌여온 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게 되면 한국말의 힘을 제대로 살려서 쓰는 일을 잣대로 삼아서 이제까지 벌여온 일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뒤따른다. 사람들은 누가 어떤 일을 잘했고, 잘못했는지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한국말을 놓고서 벌여온 일에 대해서 잘잘못을 매기는 것은 다섯 가지로 이루어진다. ‘잘하는 짓’, ‘멍청한 짓’, ‘어리석은 짓’, ‘좋은 짓’, ‘나쁜 짓’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어떻게 하지는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어떤 사람이 한국말에서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나’를 가리키는 ‘나’라는 말을 배우고 쓸 때, “‘나’라는 말은 ‘나다’, ‘낳다(=나+히+다)’, ‘내다(나+이+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라고 배우고 쓴다면 그것은 터무니가 있는 일로서 ‘잘하는 짓’이 될 것이다.

둘째로 어떤 사람이 한국말에서 저마다 따로 하는 낱낱의 ‘나’를 가리키는 ‘나’라는 말을 배우고 쓸 때, “‘나’라는 말은 그냥 ‘나’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굳이 달리 묻고 따질 필요가 없다.”라고 배우고 쓴다면 그것은 터무니를 알지 못하는 일로서 ‘멍청한 짓’이 될 것이다.

셋째로 어떤 사람이 한국말에서 사람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여겨서 온갖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의 힘을 가리키는 ‘넋’이라는 말을 ‘얼’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옛사람의 넋’이나 ‘죽은 사람의 넋’이라고 해야 할 것을 ‘옛사람의 얼’이나 ‘죽은 사람의 얼’이라고 배우고 쓴다면 그것은 터무니가 없는 일로서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넷째로 어떤 사람이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리다’와 바탕을 같이 하는 말로서,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살아가는 살림사람의 임자’이다”라고 사람의 말뜻을 풀어서, 사람들이 한국말의 힘을 제대로 살려 쓸 수 있도록 도운다면 그것은 값진 일로서 ‘좋은 짓’이 될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한국말의 말소리와 말뜻을 묻고 따져서 한국말의 쓰임새, 짜임새, 차림새, 바탕치, 발자취 따위를 바르게 풀어내어 사람들이 한국말의 힘을 제대로 살려 쓸 수 있도록 도운다면 그것은 값진 일로서 ‘좋은 짓’이 될 것이다.

다섯째로 어떤 사람이 한국말에서 ‘나’는 그냥 ‘나’를 가리키고, ‘사람’은 그냥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어서 ‘나’를 ‘나다’와 ‘낳다’와 ‘내다’로 풀어내는 것이나 ‘사람’을 ‘살다’와 ‘살리다’로 풀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내세워서, 사람들이 한국말의 힘을 제대로 살려 쓸 수 없도록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그릇된 일로서 ‘나쁜 짓’이 될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서양사람이 서양말을 바탕으로 만든 서양말 문법을 진리처럼 받아들여서 사람들이 한국말을 바탕에 놓고서 한국말의 말소리와 말뜻을 묻고 따지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이끌어서, 사람들이 한국말의 힘을 제대로 살려 쓸 수 없도록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그릇된 일로서 ‘나쁜 짓’이 될 것이다.

10.
사람들이 한국말의 힘을 살려 쓰는 일을 두고서 이제까지 벌여온 갖가지 일들을 살펴보면 ‘잘하는 짓’, ‘멍청한 짓’, ‘어리석은 짓’, ‘좋은 짓’, ‘나쁜 짓’이 이리저리 뒤섞여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일 가운데 멍청한 짓과 어리석은 짓과 나쁜 짓에서 크게 두드러진 일을 꼽아보면 다음의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로 고려시대에 과거제도가 도입되면서 한국사람은 지식을 권력의 도구로 삼는 일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들은 출세를 위해서 중국에서 가져온 한자와 한문을 읽고 쓰는 매달리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한국말에 대해서 갖가지로 멍청한 짓, 어리석은 짓, 나쁜 짓을 벌이게 되었다. 그들은 세종이 한국말을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었음에도 한국말을 버려두고 한문으로 읽고 쓰는 일을 고집하였다. 그들은 한국말의 힘을 살려 쓰는 일에 마음을 쏟기보다 한국말의 힘을 빼는 일에 마음을 쏟는 일이 많았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은 한국말의 말소리와 말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한국말을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배우고 쓰는 무지렁이말처럼 여기도록 이끌었다. 이는 크게 멍청하고, 어리석고, 나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지식을 권력의 도구로 삼는 일에 빠져 있는 이들은 이와 같은 일을 거듭해서 벌리고 있다. 그들이 받들어 섬기는 말만 중국말에서 서양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둘째로 20세기 초에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아울러서 식민지로 만들자 한국사람을 없애는 일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들은 식민지 지배를 위해서 한국사람에게 일본말을 국어로 삼게 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일본말로 된 교과서를 가르쳐서 학생들의 머릿속이 일본말로 채워지도록 만들었다. 한국사람은 학교를 다니게 되면 저절로 일본사람으로 키워지게 되었다. 나중에 그들은 한국사람이 성씨와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만들어서 한국사람이 살아온 바탕까지 지우고자 힘을 쏟았다. 그들이 한국말에 대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멍청한 짓, 크게 어리석은 짓, 크게 나쁜 짓을 저질렀다.

1945년 8월에 일본제국이 패망해서 한국에서 물러나게 되자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되찾아서 한국말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살려 쓸 수 있는 때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말이 가진 힘을 살려 쓸 수 있는 바탕을 튼튼하게 만들지 못했던 까닭으로 모든 것이 어설픈 상태에 머물고 말았다. 한국말의 힘을 살려 쓰는 일이 오로지 한글전용과 한자겸용에 있는 것처럼 싸우게 되면서 한국말이 가진 힘을 살려 쓰는 일과 한국말이 가진 힘을 살려 쓰지 못하는 일이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에서 한국말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살아가는 국민들이 누구나 헌법 정신을 제대로 깨치고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말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말이 되어야만 국민들이 헌법 정신에 걸맞은 사람으로 길러지고 키워질 수 있다. 그래야 지위의 높고 낮음 재산의 많고 적음 따위를 넘어서 누구나 주권자로서 당당하게 함께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어느 누구도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걸맞은 한국말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한국말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걸맞은 한국말을 만들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