댑싸리비
댑싸리비
어릴 적 아침에 일어나면 할아버지께선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곤 하셨다. 그 뒤 초등시절에는 내가 대신 마당을 쓸곤 했는데 무겁지 않고 슬슬 잘 쓸리기론 댑싸리 빗자루에 견줄만한 것이 없었다. 비, 하면 싸리비가 있고 대나무 비가 있지만, 김포에는 대나무가 없어 주로 싸리비를 베어다 엮어 썼다. 하지만 댑싸리처럼 가벼우면서 부드럽게 흙 마당을 달래듯 청소하는 빗자루는 없지 싶다.
어제 비가 흠뻑 와서 밭에 나가 보았다 엊그제 심은 고추는 비를 맞아선지 오줌 마려운 사내아이 고추처럼 바딱 선 것이 기특했다. 이제 자랄 일 만 남았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어린이날 신이 난 꿈나무 아이들 같다. 그런데 밭 이곳저곳에 댑싸리가 솟구쳐 있었다. 잡초라 생각하여 쑥쑥 뽑아 버릴 수도 있었으나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모종하였다. 가을이 되면 잘 자란 놈은 마당비로, 덜 자란 놈은 작업실 청소비로 엮어 보리라.
요즘은 플라스틱비, 갈대비. 대비에 싸리비, 비도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이제 비질할 일이 갈수록 적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마당 청소에 대나무비는 탄력 있게 탁탁 튀며 썩썩 소리 내며 쓸리는 것이 왜 이리 더럽냐고 야단치는 것 같고, 싸리비는 점잖게 꾸짖는 것 같다. 반면, 댑싸리비는 머리 쓰다듬으며 조곤조곤 달래는 것처럼 마당을 정리한다. 플라스틱 비는 이야깃거리가 안된다. 다 쓰고 나면 환경 쓰레기가 되니 말이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로봇이 청소하고 길도 청소차가 지나가며 쓸고 닦는다. 어린 시절 '동창이 밝았느냐?' 하며 대문 활짝 열고 뛰어나가 마당 쓸던 시절이 그립다. 쓸고 나서 훤한 마당을 보면 흐뭇하고 할아버지 칭찬받는 것 또한, 마냥 즐거운 일이었다. 이런 모든 것이 이제 나만의 기억으로 남은 아련한 추억이지 싶다. 그나저나 아직 밖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아주 작은 털비. 붓 들어 그림 그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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