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뫼 2024. 5. 7. 15:27

 

나의 아버지는 구순이 넘으셨다. 심하지는 않지만, 치매를 앓고 계신다. 젊어 국방군에 입대하여 전쟁을 치르셨다. 어려서 전쟁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 말고도 동네 분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하실 때면 전쟁 서사는 휴전에 이르러서야 마감이 되곤 하였다.

 

이야기는 당시 38선 가까운 김포 집에 휴가 오신 것부터 시작되었다. 새벽 포성이 울리고 뒤늦게 전쟁발발을 알고 귀대 중 여의도 비행장이 폭격당하는 장면부터 전쟁 이야기의 서막이 열렸다. 그 뒤 전세는 수원 대전으로 밀리고 낙동강 공방전,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수복, 북진 통일,  중공군 투입, 다시 1.4 후퇴,  지루한 공방전, 그 뒤 휴전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아버지의 3년 여에 걸친 전쟁 참전 이야기였다.

 

아무튼, 아버지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걸쳐 사신 분이다. 당신의 자랑은 화랑무공훈장이 전부이시다. 나를 비롯해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업으로 생활을 꾸리는 동생들 모두 아버지 눈에 그리 큰 자랑거리는 아니다. 방에 액자 해놓은 훈장증, 벽에 걸린 참전용사 표창장, 옷걸이에 걸린 무공수훈자회 조끼며 모자 등이 아버지의 자랑이고 역사다. 그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화랑무공훈장이시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저것이 그리 자랑할만한 것인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동족을 상대로 싸운 훈장 아닌가. 북쪽에서도 저렇게 훈장을 주고 치하를 했겠지. 전쟁은 우리들의 잘못만이 아니다. 밖에서 밀어 닥친 커다란 힘에 민족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욕망을 얹어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다. 그 십자가를 우리 민족이 지고 왔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상대를 적으로 치부하며 치열하게 싸운다.

 

난 전쟁 후 태어난 세대이다. 목숨 걸고 싸운 분들의 행동을 이해는 하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동족끼리 싸운  전쟁의 결과는 자랑보다는 슬픔의 흔적일 뿐이다. 결국, 분단시대의 자식은 전쟁세대와 또 다른 사고를 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그린 아버지의 초상 속에는 아버지와는 다른 나의 사유가 녹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