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구순을 넘기신 어머님과 식사를 한다. 작업실 아래층이다. 식탁 너머 벽에 산수화 한 점이 보인다. 아마 내 최초의 전지(약 60호) 그림이지 싶다. 휴가 나와서 그린 그림이니 1976~7년 작일 거다. 우리 동네 모습을 기본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에 논이 보인다. 시루떡 닮은 논이다.
어릴 적 서울로 전학 온 나는 방학 때만 되면 고향집을 찾았다. 고향동네 친구들과 놀다 보면 하루해가 쉽게 졌다.
동네 무녀의 집에 어린 각시가 와 있었다.
학교도 안 가고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생경하고 예뻤다.
세습무로 무녀의 길을 가려는 소녀였다.
시간은 흘러 중학교 초입 겨울방학 고향집을 찾았다. 할머니 친구였던 무녀는 늘 아팠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거둬 보살피던 소녀를 강화 큰 무당에게 보내야 한다는 말이 내 귀에도 들렸다. 조금도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소녀가 강화도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싸락눈 내리는 날 나는 그녀가 길 떠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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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귀퉁이 떼어먹고 남은
고사떡 닮은 회나무재 자갈논
신작로
박수무당 손에 끌려
열네 살 분이는 팥고물 눈물 흘리며
뒤돌아보고 되돌아보고
멀리 무당길을 떠났다
동네마루
지팡이 몸 기대고 배웅 나온
당집 무당할미 굽은 등 위로 하얗게 싸락눈이 내렸다
어여
어여 가
힘없는 손짓에 당산나무가 운다
신열神熱올라 밤새 앓던 날
분이는 젖가슴 칭칭 동여매고
시퍼런 작두 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난, 식은땀에 젖어 어지러운 몸 일으켜
방문 열 때면 어김없이 안마당에는
신미神米닮은 싸락눈이
하얗게 내려 있었다
<싸락눈> 2007년 칡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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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림이 나의 과거를 부르고 나는 잠시 시간 여행을 했다. 옛날이 가끔가끔 생각나는 걸 보니 칡뫼 나이 들었다.
아래
고향풍경
화선지 전지 약 60호 수묵담채
1976~7년 작
뭐든 배우고 싶던 독학시절 소정선생을 흠모한 결과 비슷한 풍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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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뫼 아닌 갈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