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연작 5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선생의 '나그네'란 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려있어 그 서정적 분위기에 흠뻑 젖었었다. 시는 일제강점기 시절 작품이라 할 말이 많지만 구름에 달 가듯이란 표현에 심취했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길은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미끄러지듯 걸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걸어야 길다운 길이 되고 걷다 보면 힘들고 지치게 마련이다. 길은 방향이다. 방향을 정해 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 끝없이 나타난다. 어렵게 헤쳐나가야 하는 숙제가 곧 길인 것이다. 길은 트인 공간이 아니라 끝없는 막힘이요 연결이지만 한편 단절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미로..

황무지 연작 2024.09.27

칼의 나라

인간의 역사는 힘의 역사다. 힘 있는 자의 서사다. 영웅은 힘을 가진 자였고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칼이 들려 있었다. 어느 순간 칼은 복제되어 여러 곳에 씨를 뿌렸다. 칼이 여기저기 싹처럼 솟구쳤다. 하지만 칼은 생명을 지키거나 베어낼 뿐 생명을 키우지는 못한다. 현재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그런면에서 모든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일 뿐이다. 현재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는 칼의 벌판에 서 있다. ㆍ ㆍ 황무지, 우상의 벌판 칡뫼김구 개인전 2024년 11월 13일~11월 26일까지 후원 서울문화재단 인사동 나무아트 ㆍ 칼의 나라 162.2 ×130.3cm 한지 먹 채색 칡뫼 김구 ㆍ

황무지 연작 2024.09.27

서탑書塔의 나라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을 물었던 본능 외에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익힌다. 인간의 말은 소통이면서 명령이다. 우리는 말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발명했다. 금석문을 비롯 수많은 책에 저장된 인간의 말은 세상을 유지하는 질서가 되었다. 신도 그 속에 있었고 인간도 그 속에 살았다. 우리는 문자가 가르치는 것을 기억했고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해서 보이지 않는 천국도 보았고 지옥도 상상해 냈다. 나약한 인간은 책이 지시하는 대로 살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상스레 그러할수록 세상은 무지막지해졌다. 1 책에서 나를 찾고자 했으나 어느 순간 책은 우리를 버리고 있다. 책을 도구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챙긴 자들이 세상을 황무지로 만들고 있다. 전쟁은 일상이고 인간은 자본의 노예가 된..

황무지 연작 2024.09.26

ㅡㅡ가을 전시를 앞두고

거의 2년에 한 번 하다시피 한 전시가 다시 이번 늦가을(나무아트 11월 13일부터)에 열린다. 나름 책도 읽어보고 이런저런 강의도 듣고 미술사도 들춰보고 그림 또한 셀 수 없이 봐왔어도 아직 그림이 뭔지 모르는 1인이다. 해서 전시는 늘 두렵다. 하지만 전시로 인해 또 다른 사유로 다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에 힘을 들여 치른다. 어린 시절 담벼락이나 땅바닥에 낙서하다 학교 입학 후 우리 집 소를 그렸던 기억이 있다. 크기도 컸지만 그 모습이 늠름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집 누구나 아끼고 사랑했던 대상이기에 그렸던 것 같다. 서울로 전학 와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따라 그렸다. 왜 미美술인가. 그림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더 머리가 커지니..

황무지 연작 202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