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다녀와서 93

정영신 장에 가자 출판기념시진전

어린 시절 다니던 고향 학교 앞에는 장터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장날 장터는 나에게 꿈의 동산이었다. 장터에 펼쳐진 하얀 장막은 어린 가슴을 펄럭이게 했다. 그 휘장아래 온갖 장사꾼들이 팔려고 내놓은 물건도 가지가지였다. 옷이며 신발 버선에 각종 대나무 제품. 성냥을 되에 담아 파는 분, 고무신을 때워 주는 분. 구멍 난 양은냄비나 주전자를 때워 주는 분. 커다란 가마솥에 곰탕을 끓여 파는 분 국수를 말아 파는 분, 풀빵장사, 색색이 물들인 옷감이며 털실. 온갖 동물들, 염소며 병아리 강아지. 토끼도 있었다. 대장간에서는 풀무질이 한창이고 뻥튀기 아저씨 목소리도 들렸다. 가끔은 발로 북을 치는 피에로도 나타나 읍내 극장 영화 선전도 했다. 아이들은 가라는 뱀장사 겸 약장사도 있었는데 뱀은 순전히 사람을..

박재철, 곽가네 전

ᆞ 1. 때는 봄이다. 그림은 나무에 핀 꽃보다 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돈나무다. 길 위에도 화단에도 곳곳에 돈이다. 남과 여는 부부가 확실하다. 혼인 장면을 배치한 작가의 의도로 짐작할 수 있다, 남자는 잘리고 상처투성이인 나무를 옮기고 있다. 꿈을 심는 것이겠지만 나무는 꽃보다는 돈을 피우는 나무다. 부부라는 소중한 관계도 자본으로 오염되어 있다. 은밀한 독재자 자본은 인간의 모든 곳을 점령했다. 가끔 살인도 저지른다. 점령이 쉬었던 것은 내부 스파이 인간의 욕망 덕이다. 작가는 인간의 모든 관계는 욕망의 교환가치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족도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 속에 숨어 꿈틀 되는 뱀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어온 놈이다. 아담과 이브보다 먼저 존재했다. 우리는 어찌해야 낙원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이동환 전

전시장에서 작품을 만나 자기만의 사유를 이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이 없어도 좋다. 작품은 세상에 던져진 하나의 표상이고 그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다. 물론 작가의 작업 방식이나 방향성, 이미지, 작가의 과거행적 등 관심사항은 보는 사람의 전이해와 깊은 연관이 있겠다. 화염에 불탄 잔해 속에 사람이 있다 여자인가 했지만 가만보니 팔 잘린 인형이다. 시커멓게 불에 탄 대들보며 버팀목들이 이리저리 어지럽다. 온통 냇내가 진동하는 검은 세상에 저 멀리 창으로 밖이 보인다. 이곳에 누워있는 하얀 물체는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본 ‘고래뱃속’이란 이동환 작가의 작품 이미지다. 제목이 낯설다. 갈빗대처럼 엇갈린 잔해더미, 어두운 공간, 암담한 현실, 저 멀리 보이는 숨구멍, 그..

최경선 작가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ᆞ 최경선 작가의 전시회(자하미술관 6월30일까지)에 다녀왔다. 여인이 서있다. 고개를 숙인 체 마치 통곡의 벽 앞에 있는 모습이다. 저 멀리서 발원하여 끝없이 흘러내리는 물이 있다. 아니 막을 수 없는 힘이라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장벽처럼 여인 앞을 가로막고 있다. 투명해 보여 없는 듯해 보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벽이다. 그녀의 모습 뒤로 길 위의 새들이 무언가 쪼아 먹고 있다. 그래서 뭐란 말인가. 어렵다. 제목을 본다. ‘빛을 쪼는 새’다 아! 새가 쪼아 먹는 것이 빛이구나. 작가의 의도를 나름 읽어 본다. 그녀를 대면하고 있는 풍경은 호수이기도 하고 숲이기도 해 보이지만 어둠을 품고 있다 슬퍼 보이는 여인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빛은 어둠을 이긴다지만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결국 헛것 아닌..

김억 판화전

20대 청춘시절에 지필묵을 싸들고 전국을 돌아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사는 사람과 그 지역 문화 그리고 뜨겁게 솟아오르는 국토에 대한 사랑이었다. 마침 이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드러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김억 작가의 목판화 ‘국토서사전’ 이다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 8월19일까지) 그의 작품은 주로 부감시 구도로 국토를 매의 눈으로 관찰하듯 그려내어 한층 시야가 넓고 장쾌한 맛을 준다. 멀리서보면 백두대간이며 강물, 산등성이의 기운을 그려낸 산수화를 닮았지만 가까이 대하면 돌이며 나무하나 집 한 채 그리고 도로나 배 갈매기 등 끝으로 그곳에 사는 인물들을 새겨 넣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목판으로 한 칼 한 획 파낸 것이 정성스럽기 그지없다. 그의 발걸음은 서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