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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자

칡뫼 2021. 2. 2. 10:14

낙오자

 

    군대시절이었다. 부대에서는 1년에 한 두 차례 체육대회 겸 완전군장 구보 대회가 있었다. 20키로 가까운 군장을 메고 10키로 정도의 거리를 뛰는 대회였다. 나는 빨리 달리기는 못해도 오래달리기는 잘했던 덕에 등위에 들곤 했다. 사령부 예하부대가 참석해 등위를 매겼는데 우리부대는 잘 뛰는 사병을 골라 평소 연습한 덕에 늘 우승권에 있었다.

     어느 해엔가 분대장이었던 나는 팀을 만들어 대회에 참석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평소 연습을 자주했던 터라 분대원은 모두 자신감이 넘쳤다. 5분 간격으로 팀을 출발시켰는데 우린 앞 팀을 따라잡았다. 한참을 뛰니 숨도 차고 등에 땀이 흐르고 철모 턱 끈이 땀에 범벅이 되어 벗겨질 지경이었다. 갈수록 기운은 빠지고 구호 소리로만 가는 인형처럼 기진맥진이었다. 반환점을 돌아 달리기를 얼마쯤 숨은 더욱 가빠왔다.

    어딘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던 이일병이 비틀거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소총을 곁의 동료가 들러 맸다. 소총 두 개를 매고 달리는 병사. 서로 받아주며 또 달렸다. 갈수록 얼굴이 파리해지는 이 일병, 동료가 배낭도 벗겨 매고 그래도 아니다 싶어 탄띠를 벗겨 내 어깨에 둘러맸다. 하지만 구보 동작은 점점 더디어졌다. 주변의 병사가 다시 철모를 벗겨 들었다.

      좀 전에 추월했던 분대가 다시 우리 옆을 지나쳤다. 이일병은 힘든 상황에도 자기 때문에 부대가 처지는 걸 미안해했다. 하지만 낙오자를 버리고 갈 수 없는 것이 군대다. 걷고 뛰기를 반복한 우리는 결국 4위로 수상권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낙오자를 부축하며 함께한 모습에 연병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다.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장려하는 사회구조다. 대신 돈이 없이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자리도 만들 수 없다. 어느 사회 건 낙오자는 있게 마련이다. 이일병이 열심히 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가난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앞서가는 사회는 지옥이다. 늘 뒤를 돌아봐야 한다. 함께 달려야 한다.

     코로나를 나름 잘 견딘 우리나라는 올해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한다는 전망이다. 이제 낙오자들에게 좀 더 눈길을 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 지탱해주던 사다리의 아래 쪽 구조물이 약해져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낙오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 덕에 버텨온 세상이다. 그런데 이제 까마득히 높아진 사다리의 아래 쪽 나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빠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부러워했던 나라는 낙오자를 잘 챙기는 사회구조를 가졌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그러한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정치인들이 되겠다. 그들은 타자를 위한다는 이름아래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우를 범한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잊은 세력들은 언제나 필멸했다. 그것이 역사다.




칡뫼 뻔한 소리 한마디.


옛그림
푸른노을
80x120cm
한지먹채색
칡뫼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