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작업실에 내려와 작업을 하고 있다. 운전하고 오는 내내 지난 3월 6일 정부 발표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우리나라 근 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통탄할 일이 한 둘이 아니다.
고종은 1876년 문호를 개방하고 첫 서방 교역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고종은 미국이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 줄 것을 기대했다. 고종은 밀사를 통해 미국 국무부에 “우리는 미국을 형님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오”라는 말을 전했다. 여기저기 손 내밀어야 하는 신세였으니. 조선이 보낸 밀사들이 일본의 만행을 중지시켜 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루에지지 않았다. 반대로 루스벨트는 국방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보내 일본 제국 내각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와 1905년 7월 도쿄에서 비밀 협정을 맺게 한다. 이것이 까쓰라 태프트 밀약이다.
조선의 지배권을 일본에 넘긴 것이다. 대신 미국은 필리핀을 챙겼다.
제발 속지 마라. 우린 지금도 속고 있다.
미국은 우리 편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일 뿐이다. 이는 모든 국가의 본질이다.
결국 이 회담으로 힘을 얻은 이토오 히로부미는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 일본이 손에 쥐는 을사늑약을 같은 해 11월에 강제로 체결하고 결국 힘을 잃은 조선은 5년 뒤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는 경술국치를 맞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을사늑약에 버티지 못하고 서명한 대신들을 을사오적(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이라 부른다. 이번 윤정부는 이번 협상에 협의문도 제대로 없고 스스로 납작 엎드렸다.
역사가들은 3월 6일 발표 외교 참사를 어찌 기록할까 궁금하다.
누가 이번 외교 참사에 깊이 관여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과 일본의 행태가 딱 120년 전 모습 아닌가. 당시 조선은 힘이 너무나도 없었다. 주변 열강들에 린치를 너무 많이 당한 상처투성이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더 떨리고 속상하고 억울한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밖은 봄비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