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우울증
나이 들수록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말 잘 통하는 지인과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이 쌓아 온 경험치, 즉 지식이나 정보를 서로 배설하며 치유하기도 한다. 이때 세상을 논하며 울분을 뱉어내기도 하고 슬쩍 자기 자랑을 얹어 인정욕구를 해소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우울한 때도 있는데 나의 경우는 대부분 작품이 제대로 안 그려질 때이다. 처음 의도한 이미지와 그려지는 작품의 공통분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다. 심하면 그대로 밀고 가느냐 뜯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느냐의 갈등까지 유발한다. 주로 진행되는 이미지에 파묻혀 갈 길을 못 찾는 경우인데 이때는 심하게 부족한 재능을 탓하며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도껏 시간이 지나 바라보던 화판에서 다시 느낌이 오고 꺼져가던 창작 욕구가 되살아나면 우울증은 깨끗이 사라진다. 원하던 이미지로 다가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작품은 다시 옷을 입는다.
순간순간 챙기지 못하고 흘려보낸 이미지가 그 얼마던가? 그들은 영원히 사라졌다. 메모장을 들추거나 기억을 되살려낸다 해도 그때와 또 다른 존재일 뿐이다. 심상이나 사유를 통해 만난 수많은 이미지는 낚시꾼이 고기 잡듯 순간 챙겨야 한다. 낚싯바늘의 날카롭고 번득이는 미늘처럼 화판에 점이라고 찍어놔야 한다. 줄이라도 그어놔야 한다.
타인의 작품을 바라보면 쉽고도 쉽게 참으로 잘도 그렸구나 싶다. 부자로 잘사는 사람을 보면 돈도 참 쉽게 잘 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침까지도 맑던 하늘에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또한, 그저 쉽게 내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더운 바람과 찬 바람이 치열하게 부딪치고 습도와 기압이며 온도까지 많은 것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 결과다. 세상에 변화를 불러올 봄비 아닌가! 화가의 작품도 마찬가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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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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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작업 중인 작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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