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엘의 '1984'란 소설이 있다.
이 작품은 실제 1949년 나왔는데 1948년에 집필하며 제목을 뒤집어 1984로 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당시로선 미래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적확하게 정보사회를 예언한 소설로 갈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작품에 나오는 최고 권력자 빅브라더는
털레스크린, 마이크로폰 등을 활용해 세계를 지배한다.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배하는 세계 중에 오세아니아에서 일어난 일을 쓴 작품이다. 주인공으로 요즘 많이 듣던 스미스. 줄리아. 오브라이언도 나온다. 작품의 주제는 인간성 말살의 결과를 보여준다 할까?
아무튼 소설 속 세계는 감시사회 정보사회가 이끄는 전체주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cctv나 자동차 속도 감시장치, 아파트 방문기록, 마트 구매목록 등도 작품이 말하는 내용과 마찬가지다. 모든 기록이 스마트 폰에 저장되는 상황도 같다.
내가 물감을 사려고 검색하면 수많은 안료 광고가 나에게 쏟아진다. 책을 검색하면 바로 출판사가 줄을 선다. 이제 내가 무엇을 사고 지하철 이동경로는 어떠한지 택시를 즐겨 타는지 사람마다 지문처럼 기록되고 있는 세상이다. 우린 어느새 부처님이 아닌 빅 브라더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
구글. 메타(페이스북, 인스타). 네이버. 등등에 우리의 일상이 매일매일 기록되며 화석화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잊고 있던 정보가 어느 날 다시 나를 옭아맬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판도 AI가 판단한 자료로 판결이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신용점수처럼 사람마다 바코드(사실 이것도 구식이다)가 부여될 것이다.
지금 여야의 싸움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우린 AI 로봇보다 대접 못 받는 세상으로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 효능, 효율, 가치, 숫자로 평가되는 세상이다. 가면 갈수록 늙은 인간은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공부도 잘하고 쉬지 않고 일하고 군소리도 없고 밥투정도 안 하는 휴먼로이드가 거리를 채울 것이다. 잡생각 많은 인간은 이제 적당한 나이로 사라지는 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1984-5년이지 싶다. 군사정권이 민주인사들을 잡아들였다. 숨어 있어도 잡아내고 알지도 못하는 정보를 신문에 흘렸다. 1984년 초에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조지 오엘>이란 비디오 작품 방영도 있었다. 그 뒤 소설 '1984'가 생각나 그렸던 그림으로 기억된다. 생각을 유도하는 언론이나 방송 스피커. 감시 카메라마다 줄이 있다. 당시 무선은 보편적이지 못했던 시절로 보인다. 모든 것이 감시되고 드러나는 정보화 시대에 대한 이미지였다.
아무튼 이제 AI시대다. 과연 행복한 세상으로 발전할까? 다들 환상적인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여러 걱정이 앞서니 칡뫼 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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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우린 발가벗겨지며 산다
97x79.5cm
기름한지 먹 채색
1985년작
칡뫼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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