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좋을 듯 싶어

조영남 대작사건에 대한 이미혜님의 글

칡뫼 2018. 9. 4. 15:37




예술작품이 작가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이며 아이디어부터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작가의 손이 가야한다는 생각은 근대 이후 등장해 20세기 중반 정점에 이르렀던 예술관이다. 

20세기 후반 팝아트 등장 이후 작가와 작품의 개념이 달라지고 생산방식도 달라졌다. 

앤디 워홀은 자신을 제작자라 부르고 자신의 아틀리에를 공장이라 부르며 실크스크린의 복사기법으로 작품을 무수히 찍어냈다. 조수들을 동원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잘 나가는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 많은 사람들이 조수를 동원해 작품을 만든다.


허나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아이디어는 반드시 작가로부터 나와야 한다. 또한 작품이 굉장히 대작인 경우가 많고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

아주 대형작품이나 복잡한 작품은 남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제작이 불가능하다. 

설치미술, 조각 같은 것이 여기 해당된다. 

요즘은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하고 양쪽을 넘나들며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많다. 

디자인이란 작가가 아이디어를 주고 제품 생산은 다른 사람이나 공장에서 하는 것을 말함이 아닌가?


앞에 예를 든 경우와는 성격이 다른데 유명 작가들이 제자나 조수를 시켜서 작품을 만들게 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이래도 되는지 사실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기만 하면 작품이 팔리니까 조수를 써서 많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조영남은 자신의 행위가 예술계의 ‘관행’이라고 했는데 이걸 가리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유명 작가의 그림을 사가는 고객도 제자나 조수가 어느 정도 손을 댔다는 것을 알고 사간다. 

혼자서 그렇게 많은 작품을 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역시 관건이 되는 것은 그 작가 고유의 아이디어와 스타일이다.

 너무 늙은 대가가 조수를 써서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앙리 마티스는 늙어서 붓을 들 힘이 없어지자 조수를 시켜서 작업을 했다. 말년의 색종이 작품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그의 것이고 아무도 그게 마티스 작품이 아니라고 시비 걸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관전 포인트가 드러날 것이다.


조영남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그의 것인가? 

꼭 조수를 사용해야 할 만큼 대작인가? 

설치미술처럼 복잡한 작품인가? 상업적 생산을 위한 디자인 성격의 작품인가?

많이 양보해서-그 망할 놈의 관행!-

조영남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자기 스타일을 갖고 자기 세계를 쌓은 대가인가? 

조수를 써야할 정도로 작품 수요가 많은 작가인가? 

그럴 정도로 늙은 대가인가?

이도 저도 모두 아니라면 이런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내 생각에는 하나밖에 없다. 사·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