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머니 아버지를 어떻게 알까?
어쩜 부모님조차 학습되고 길들여진 결과로 구별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우리는 본능을 빼고는 결국 밖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의해 각색되고 정리되는 존재다. 즉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성립된다.
누구는 그런 면에서 자아와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파했다. 인식이나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도 했다. 또한 그 무의식은 수많은 타자의 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했다. 결국 우리는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온갖 접촉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에 의해 내 마음을 정하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다수결의 원칙을 정해 권력자를 선출하는 세상이다. 피선출자는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며 선택 받기 위해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퍼뜨려야 한다. 결국 정보를 퍼뜨려 주는 자의 힘이 커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한 결과로 이제 언론은 세상의 권력이 됐으며 정치 권력자들은 그들과의 관계설정이 주요한 과제가 되었다.
장악이냐 달래기냐 동거냐 동침이냐.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이유다.
언론이 권력자의 편이 되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권력자의 잘못으로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만다. 인간은 사회 구조의 부속품으로 치부되고 개개인의 삶은 무시된다. 또 다른 독재국가의 탄생이다.
언론은 악마와 마녀와 빨갱이를 만들 줄 알며 그들 스스로 형틀이 된다.
우리가 숭배하는 진리는 사라지고 그들의 입맛대로 재단하는 차가운 형식만 남았다. 십자가에 매달린 존재는 멀리 내다버리고 그 형틀만 숭앙하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병든 종교가 사욕에 찬 정치권력이 그렇고 썩은 언론이 부추긴다. 질병으로 죽은 사람보다 잘못된 생각으로 죽인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 세상사다. 그대는 부속품이 될것인가? 기계를 멈추고 살리는 변수 스위치가 될것인가?
대답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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