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전시 '황무지, 우상의 벌판' 전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의 모습을 그린 전시였다. 그들의 민낯을 이미지로 드러내고 싶었다. 그로 인해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생각을 환기하고 싶었다.
전시 중 들르신 백정희 작가님에게 전시와 함께 출간한 화문집 <고양이처럼 출근하기>을 선물하니 다음날 자신의 책을 들고 오셨다.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 <황학동 사람들>이었다. 사실 읽고 싶었지만 읽지 않은 책이었다. 일찍이 조세희 선생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을 읽고 나의 슬픈 어린 시절이 떠올랐던 기억 때문이다.
나는 60년대 서울로 전학 와 살며 동교동 판잣집에서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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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때문이었을까. 판자촌에서는 하루가 멀게 싸움이 일어나고 아이들 울음소리로 지새는 날이 많았다. 그때 마침 소란스럽게 기차가 지나가면 아기울음이 멎거나 부부싸움이 그치기도 했다.
서울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자 부모님은 할머니 댁에 남아있던 동생들을 데려 오셨다. 함께 모인 가족은 행복했다. 창문에는 커튼도 쳐졌고 어머니 방에는 부업용 재봉틀도 있었다. 내 책상도 생겼다. 뒤 창문을 열면 구기자나무가 고향을 선물해 줬다. 잿빛도시에 꾸린 우리만의 보금자리였다.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동네가 사라졌다. 동네가 폭격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었다. 놀란 나는 집으로 뛰어갔다. 우리 집도 없어졌다. 강제철거된 것이었다. 짐정리를 하시던 어머니는 나를 보자 허탈한 웃음을 지으셨다.
“네 책 챙겨놨는데 빠진 것 없나 봐라”
벽이 부서진 채 드러누워 있고 해머로 두드린 듯 구멍 난 합판, 그 위로 얼마 전 바른 분홍색벽지가 속살을 드러낸 채 찢겨 있었다. 우리 식구만 볼 수 있었던 빨간 구기자 열매도 길에서 훤히 보였다. 재봉틀, 양은밥솥이며 책, 아끼던 크레파스도 나뒹굴고 있었다. 상 받은 경복궁 ‘향원정’ 그림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화문집 <고양이처럼 출근하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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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연으로 도시의 낙오자였던 우리 가족, 그들 만의 성밖으로 내 밀쳐진 존재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작품 <황학동 사람들>은 수작이다. 흔들리지 않는 잔잔한 문체와 인물의 세세한 묘사 주변풍경에 닿은 작가의 시선은 화가를 훌쩍 뛰어넘는다. 구성 또한 단단하다. 청계천 주변 상인들을 그려내기에 앞서 돌틈의 잡초와 줄, 밧줄의 사유를 작품 바닥에 깔고 세상사를 풀어낸 수작이다.
나조차도 사는 것이 힘들어 더는 낮고 더럽고 시끄러운 아우성은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힘들다고 외면하면 누가 그들을 바라볼까.
작금의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다. 보통사람들은 주식시장이 흔들리고 대기업의 장래가 불투명해져야 나선다.
하지만 세상의 말초신경 같은
서민들은 숫자나 그래프가 없어도 일찌감치 안다. 장사가 안되고 구하려던 알바가 사라지고 인력시장에서 사람이 안 팔리는 것을 보고 안다. 하루하루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이다. 한국말에는 서양의 사유보다 깊은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나, 너를 넘은 우리다. 모두 함께 다 함께요 더불어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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