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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아래 낙원

칡뫼 2021. 3. 18. 08:14

 

낙원상가 아래 낙원

인사동을 찾아 몇 군데 전시를 보고 나니 출출하다. 낙원상가 아래를 걷다 국밥집이 보이기에 들렀다. 주문하니 5분도 안되어 깍두기와 국, 그리고 밥 한 그릇이 나온다. 상 위에는 기본으로 놓인 왕소금과 고춧가루가 그릇에 그득하다. 그래 싱겁게 살다가는 훅 가는 세상이다. 맵고 짜게라도 먹으라는 뜻일까.

밥을 말았다. 간을 더하지 않았는데 조금 짜다. 하지만 어르신들 입엔 맞지 싶다. 뒷좌석 노인이 막걸리 한 잔을 사서 드신다. 가치담배 팔 듯 여기선 술도 잔으로 파는가 보다. 나도 한 잔을 청했다. 철철 넘치도록 따라준다. 한 잔 들이키고 깍두기를 입에 넣으니 식초가 따로 없다. 그런데 묘하게 낯설지 않다. 어릴 적 장터에서 보았던 맛이다.

뚝딱 비우고 계산하니 국밥 이천 원, 막걸리 천원 도합 삼천 원이다. 낙원상가 아래 우리가 찾던 낙원이 버젓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려니 아무래도 밥값보다 비싸다. 이건 아니다 싶어 조계사 경내 카페 '가피'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에서 파는 천 원짜리 커피가 생각나서다. 부처님께 합장하고 들른 카페는 문이 닫혀있다. 인생은 늘 그렇다. 원하는 것은 친절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커피 자판기에 종이돈 천원을 넣는다. 잔돈 칠백 원이 시끄럽게 굴러 나온다. 커피 한 잔, 오백 원짜리 하나에 백 원짜리 동전이 둘. 하나로 넷을 얻는다. 부처님의 가피다. 시간을 녹여 마시고 돌아오는 길, 화단의 지칭개가 환하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