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주인장에게 말을 꺼냈다. 벽에는 이런저런 산수화, 화조화, 달마도까지 집게에 달려 늘어서 있고 둘둘 말린 화선지며 필묵이 가득했다.
“어디 좀 봅시다.”
두꺼운 안경을 쓴 중년의 주인장이 안경테를 만지며 말했다. 주인장은 넘겨받은 그림을 펼치더니 내 얼굴과 그림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런 그림은 안 팔려요. 온통 황갈색에다 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이렇게 앙상해서야.”
“더군다나 논바닥까지 싹 베어버린 황량한 벌판이니 쓸쓸해서 원.”
저렇게 그려야 팔린다며 주인장이 지목한 그림은 푸른 숲과 나무, 반쯤 가려진 기와집. 안개가 자욱하고 폭포가 쏟아지며 새들이 군무하고 강에는 낚싯배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청록산수였다.
돌아서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내 마음이 황량한데 어떻게 푸르게 그리나. 푸른 산은 와닿지 않는 걸.’
당시 세상을 보는 내 마음이 그랬다. 가난했으며 장래가 불투명했고 막연하지만 홀로 그림세계를 엮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앙상한 늦가을 풍경이 늘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날 맞은 퇴짜는 살면서 당한 그 어떤 거절보다도 가슴 아팠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슬프고 화가 났다. 왜 그림을 들고 나왔지. 바보처럼.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