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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챔질 .

칡뫼 2023. 12. 3. 16:36

    고향 김포에는 한강 하류 벼농사 지역답게 수로가 많고 저수지도 여기저기 있었다. 낚싯대로 처음 고기를 잡았던 때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지 싶다. 이제 낚시를 거의 접었지만 4-50대까지 저수지나 수로에서 대낚시를 즐겼다.

    예전 서울 강서구로 이사와 살던 시절 일이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개화수로'가 있었다. 낚시를 좋아하던 나는 여름철이면 새벽에 낚시를 했다. 낚싯대 하나로  2, 30수를 건져 올리고 집에 와 출근준비를 할 정도였다. 장마로 넘쳤던 수로는 고기가 많았다. 새벽 5시경 어스름 동녘이 밝을 때쯤 여러 낚시꾼들이 몰려와 자리를 잡았는데 항상 수량에선 내가 앞섰다. 다음날이면 내가 앉았던 자리는 다른 사람 차지였다. 아마 그 자리가 고기가 많이 잡히는 자리인 줄 알고 일찌감치 선수를 친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제 그분이 앉았던 자리에서 고기를 낚았는데 역시 어부처럼 고기를 줄줄이 낚았다.
  
    이삼일 후 그분이 내게 와서 어찌하면 고기를 잘 잡느냐고 물었다. 낚싯대를 보았더니 우선 '찌맞춤'이 되어 있지 않았다. 찌맞춤이란 봉돌과 낚시 바늘을 합친 무게와 찌의 부력이 평형을 이루는 상태인데 그분은 봉돌이 무거워 가라앉는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입질을 해도 반응이 제대로 안 되고 간혹 먹이를 물고 달아나는 붕어를 한두 마리 잡는 정도였다.
 '찌맞춤'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고기를 잡기는 했으나 역시 조황이 좋지 않았다. 차츰 내 낚싯대 근처로 낚시를 드리우곤 하였다. 계속 잡아내니 내가 있는 곳이 고기가 많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다시 그분이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찌도 맞춰주셨는데 잡는 고기는 왜 선생님의 반도 안 되지요".
나는 답을 해줬다.
"그건 '헛챔질'을 안 해섭니다."

   헛챔질이란 물속의 고기를 모으는 방법이다. 떡밥낚시의 경우 일정한 곳에 낚시를 드리우고 조금 기다린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입질이 없어도 고기를 채 듯 힘주어 낚시를 들어 올리는데 이를 헛챔질이라 부른다. 당기는 힘에 떡밥은 물속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떡밥은 적당히 부드럽게 개야 하고 낚시를 일정한 곳에 정확히 투척해야 한다. 이런 동작을 수차례 하다 보면 밑밥이 쌓이고 그 근처로 물고기는 몰려든다. 결국 기다림 끝에 그곳은 고기밀집 지역이 되어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고기를 불러 모아 잡으니 차원이 다른 낚시를 하게 된다. 고수는 헛챔질을 잘한다. 낚시터에 먼저 왔던 낚시꾼이 재미 못 보고 일어난 곳이 되려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이유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장은 헛손질이 될 망정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결과를 만든다. 다작 중에 수작이 있다는 말이 있다. 수많은 헛챔질의 결과로 장인이 탄생하고 좋은 작품도 탄생되는 것이 세상 이치일 것이다.


칡뫼  옛날 낚시 그림을 보다가

사실 조선시대 그림에 낚시하는 장면이 많은데 주로 강태공을 모티브로 작업한 것이라 할 수 있을 듯. 고기 낚기보다는 때를 기다린 모습으로 선비의 입신양명의 바람이 녹아 있다고 해석 할수도  있을듯.



겸재 정선 필 조어도(謙齋鄭敾筆釣魚圖) 조선(朝鮮) / (軸) 紙本水墨(종이에 먹) 117.2×70.3cm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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