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씨치곤 쓸쓸하여 난로에 나무도 넣었다. 작업실에 일찍 내려와 차 한잔을 마신다.
내 생각이 담긴 대상을 찾아 그리던 시절을 지나 이제야
사유를 이미지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감각도 무디어지고 영특함도 사라진 지금은 작업 자체가 답답할 때가 많다.
뇌에서 만들고 보았던 그림이 화판에선 딴 놈이다. 재주가 미천한 탓이다. 요즘은 이런 사고나 사유까지도 AI에게 부탁해 만들어준 이미지를 옮겨 담는 화가도 많다는데 이젠 기계 하고도 경쟁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결국 그림은 자랑도 아니고 인정욕구의 대상도 아닌 나 자신의 배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산책 길을 걷다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처럼 그저 흘러넘치는 나의 향기. 혹은 답답하여 소리치는 아우성.
또는 성질에 못 이겨 깡통을 걷어차는 발길질. 아니면 돌팔매질 일거다.
답답한 세상에 숨구멍 내는 일이 화가라 생각했는데 나 스스로 답답한 미로에 갇혀있는 오늘이다.
그래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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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뫼 작업실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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