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세시 풍습 놀이에는 윷놀이 외에도 연날리기가 있었다. 연은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날렸다.
이때가 바람이 강한 때이기도 했지만
해가 바뀌니 새해 소망을 하늘 높이 날리는 기복을 겸한 놀이였다.
연에는 가오리연과 방패연이 주를 이루었는데 가오리연은 꼬리를 길게 달아
그 모습이 물고기 가오리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연 중의 연은 누가 뭐래도 방패연이다.
방패연은 사각형 방패를 닮아 붙은 이름이지만 공기역학적으로도 뛰어난 연이다.
가오리연은 꼬리를 길게 달아 그 모습을 뽐내지만 높이 오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방패연은 높이 오르는 데다 줄을 당겼다 놓으며 바람을 태우는 기술로
좌로 우로 이동도 가능하고 자세를 뒤집어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할 수도 있다. 연이 땅에 가까이 닿을라 치면 줄을 늘어트려
자세를 바로잡게 한 다음 얼래의 줄을 재빨리 감아 하늘로 솟구치는 장쾌함을 선보일 때면 주변에서 탄성이 쏟아지곤 했다. 방패연은 한마디로 연싸움도 가능한 전투형 연이다.
대나무로 머릿살, 창살, 중살에 가느다란 허릿살을 한지에 붙여 만드는데 가운데는 방구멍을 뚫어 공기저항을 완화한다.
머릿살 줄을 당겨 활처럼 휘게 만들고 머리 양쪽에 맨 줄과 방구멍 아래 중살에 묶은 꽁수줄을 하나로 모아 피라미드처럼 줄을 묶는다. 여기에는 수많은 노하우가 적용되는데 방패연 자체가 고도의 역학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파아란 겨울 하늘에 높이 솟은 하얀 연 혹은 색동 장식을 한 방패연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긴장감은 덤이다. 가느다란 풀 먹인 무명실에 몸을 맡긴 연은 보일 듯 말 듯 멀어지면 짜릿한 공포감까지 선물한다. 얼래에서 풀려나가는 실만이 내 몸과 연의 유일한 연결선이다.
이리저리 연놀이를 하다 보름날이 되면
어김없이 연날리기를 중지했다. 연을 누구보다 잘 만들고 잘 날리던 나는 어른들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줄을 끊었던 기억이 있다. 그전에 연에게 편지 보내기 행사가 있었는데 동그란 종이에 소원을 적고 가운데 구멍을 내고 한쪽을 잘라 연줄에 끼운 후 연에게 실려 보내는 거다. 여러 장의 편지는 줄을 따라 바람을 타고 연에 이르렀다. 곁에 있던 삼촌이 담뱃불로 실을 끊자 연은 힘을 잃고 하염없이 날아갔다. 눈물을 찔끔 참고 손을 흔들던 생각이 난다. 풀린 얼래의 무명실도 덩달아 연과 함께 사라졌다. 끈이 떨어진 것이다.
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데에는 줄이 필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줄이 있다. 선 후배요 동문이요 같은 동향 같은 혹은 직업까지도 찾고 매달린다. 하지만 그 잘 나가던 연도 끈이 끊어지면 바람에 밀려 떨어진다. 그래서 줄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요금 끈 떨어진 연이 많다. 살려고 발버둥 치지만 광풍에 쏟아지는 낙엽 같은 신세다. 왜일까?
연을 날리다 보면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중심이 제대로 잡힌 연은 높이 오를 뿐이다. 하지만 좌나 우로 중심이 쏠린 연은 멀쩡하다가도 강풍이 불면 못 이기고 뱅뱅 돌게 된다. 연의 운명이다. 해서 연을 만들 때 중심 잡기가 가장 어렵다.
아무튼 요즘 정치인을 비롯한 군인과 공직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중심을 잃고 엉뚱한 줄을 잡았다는 데 있다. 잡아야 할 끈은 국민들의 마음이었다.
국민의 마음줄은 잘 보이지 않지만 질기기가 끝이 없다. 수천 년을 지탱한 끈기와 피와 땀, 눈물로 엮어진 끈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엉뚱한 욕망줄에 매달린 존재들, 발버둥 치지만 늦었다. 이제 낙하와 추락뿐 끈 떨어진 연이 된 것이다. 이제 하늘을 날던 장쾌한 비행도 할 수가 없다. 국민을 위한 마음 줄을 놓은 결과다. 많이 배운자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