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이었습니다
둘 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싫어해서
휴가철을 피해 떠났습니다
이번 여행은 변산반도 일원.
부안의 내소사, 곰소염전과 포구 그리고 채석강이었죠
그중에서도
내소사 대웅전과 원교 이광사 선생의 대웅보전 현판 글씨
그리고 꽃살문이 보고 싶었습니다.
몇 시간 운전 후 도착한 곰소염전입니다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 있네요
가장 바쁜 5,6월을 지나고
흐린 날씨에 일하는 사람까지 별로 없어서인지
적막해보였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노동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지금의 염전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부터 소금을 생산 노량진으로 가져갔다는군요
다른 곳에 비해 미네랄이 10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성만큼이나 역사를 증명하는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곰소항의 젓갈이 유명한 것도 곰소 염전이 있어서일 겁니다.
깔아놓은 나무판 위로 레일이 있죠
소금밭에서 창고로 무거운 소금을 운반하던 길입니다
완성된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들
사실 소금은 고대로 부터 귀한 물품이었죠
서양에서 솔져,샐러리맨 등의 어원이 '솔트' 소금에서
유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소금을 생산을 할 수 있는
천연염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서해안은 아주 소중한 자산이죠
기울면 지탱하고 쓰러지면 세우고
고치며 버텨온 창고 모습이
고달픈 우리네 인생을 닮았습니다
그래도 가야한다고
덩그러니 놓인 자전거 한 대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 바다풍경입니다
민초들의 역사와 수많은 사연을 알고 있을 텐데
갯벌은 말이 없었습니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말을 잃었을까요
홀로 상념에 젖어봅니다
조용한 바닷가를 산책하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음날을 기약했네요
드디어 내소사 입니다
일주문 글씨 '능가산내소사'는
멀리서 보아도 一中 김충현 선생 글씨네요
일주문을 지나 절로 들어서는 길은
전나무 숲길이었습니다
<노랑상사화> 앞에 어린이 모습이 보여 담아봤습니다
이건 <목백일홍> 입니다. <배롱나무>꽃이죠
줄기가 매끄러워 '원숭이미끄럼나무'란 애칭도 있죠
들어서는 길 좌측에 부도전이 보였습니다
절과 관계된 선승, 고승들의 부도 입니다
그들이 평생 안고 갔을 '화두'
그 깨달음 '하나만이라도 간직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
봉래루에 다다랐네요
봉래루 전경입니다
어느 가람이던지 대부분 이층 누각을 지나면
부처님이 계신 세계로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죠.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지나지 못하게
계단이 가파르거나 1층 높이가 낮게 구성되어 있죠
유교가 장려되던 조선시대에는 콧대 높은 양반들의
고자세를 불가에서는 어쩜 건축으로 제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처님을 뵈러 오면서
자연스레 자세를 낮추게 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돌 위에 기둥을 세운 건축이 여기서도 돋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고개를 숙여야만 지나갈 수 있는 높이였다 합니다
아마 1987년 해체 복원하며 1층 천정을 높인 듯 합니다
계단이 가파르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밑을 보게되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부처님 계신
대웅전 문앞에도 거의 계단이 있죠
드디어 아미타 삼존불이 계신 대웅보전입니다
백제시대 창건된 소래사가
지금의 내소사인데
대웅보전은 조선중기에 다시 지어진
목조건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실재로 보고싶던
원교 이광사 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와 거의 비슷한 글씨로 해남 대흥사에 현판이 있는데
아래와 같이 생겼죠
해남 대흥사 현판 원교 이광사 글씨
어떻게 보이시나요
기존 구양순 왕희지 안진경 등의 서체에 비해
또 다른 부드러운 글씨체이죠.
내소사와 대흥사 현판글씨는
거의 같아보이지만 해남사 것은 기개가 돋보이고
내소사 것은 유연함이 더욱 살아 보입니다
원교 이광사 선생은 조선의 명필로 중국 글씨를 소화한 후
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서체에 살려낸 서예가이며 학자였죠
일명 동국진체를 완결한 분입니다
그림의 겸재 정선처럼 글씨에서 일가를 이룬 분이라 할 수 있죠
중국색을 탈피한 최초의 서예가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큰 '大'자가 사람이 도포자락을 날리며
휘적휘적 걷는 것 같지 않나요
그것도 거침없이
이 글씨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잘아시는 일화일 텐데요
추사 선생이 제주도로 귀양가다
해남 대흥사를 들러 초의선사를 만났을 때
그곳에 걸려 있던 원교선생의 글씨를 보고
"조선 글씨를 다 버려 놓은 저 글씨는 뭔가"
호통치며 대웅보전 글씨를 떼어내게하고
자신의 글씨(무량수각. 아래사진)를 걸라 했다죠
해남 대흥사 추사 편액
당시 추사는 엘리트증의 엘리트로 중국에서도 칭송을 받았던 몸인데다
학식도 상당했죠. 그런면에서
기존 향토 선배 학자나 문신을 깔보는 면도 있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기개 넘친 젊은 학자였죠
거기에다가 원교선생과는 당파도 달랐죠
물론 원교선생 사후의 일입니다
하지만 제주도 9년 유배 뒤 돌아오는 길에 대흥사에 들러
추사선생은 초의선사를 만나
"원교 글씨를 버리지 않았으면 다시 걸게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오랜 귀양살이로 글씨에 일맥을 이루고
좀더 성숙한 사람이 됐다는 증거로 회자되는 일화입니다
그래서 다시 걸었던 글씨가 위에 보여드린 글씨
'대웅보전'입니다
외로운 귀양살이를 달래려
두 분 모두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고 때를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교는 귀양(약 25년)터에서 생을 마쳤고
추사는 생환했죠.
오랜 내공으로 독보적인 개성을 찾았던
당대 조선 최고의 서예가가 두 분의 서체가
귀양살이로 완성된 셈이죠
이 절 저 절에서 혹은 사대부가에서
귀양터까지 찾아가
글을 받아 온 것이 지금 우리 눈에 남아있는 것이죠
절 추녀를 보면 다포식 구조인 공포가 아름답습니다
워낙 능력있는 목수의 솜씨여서 못 없이 나무로
짜 맞춘 훌륭한 목조 건믈이라는군요
당시 최고의 장인 솜씨가 틀림없습니다
특히 문짝은 소목장 담당인데 아래와 같이
아름다운 꽃살문을 조각을 해서 짜 맞춘 것도 보이니
요즘 말하는 드림팀이 틀림없습니다
뛰어난 능력에 더해진
깊은 불심의 산물일 겁니다
꽃심에 가끔 못이 보이는데 후대 에 만든 일이라는군요
눈이 행복해서 말을 잊었습니다
주로 연꽃 모란꽃 국화꽃 문양입니다
문이 커서 문 아래쪽 궁판이 둘로 나눠져 있습니다
넓은 송판 하나를 쓰면 갈라지거나 터질 것을 염려한 것이죠
대웅보전 뒤에 있는 문
아름답죠
무색이 색을 압도하는 순간입니다
절 내부입니다.
바깥과는 달리
단청이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 계신 방 답게 정성이 그득합니다
다시 내려가면서 본 봉래루와 마당을 잇는 다리
오른쪽이 봉래루 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왼쪽은 부처님 계신 마당이 되는 것이죠
사찰답게 열매를 염주에도 쓴다는
중국원산의 보리자나무(피나무 종류)도 보였습니다
절에서는 그냥 보리수나무라 부르지만
일반 야생 작은 보리수와 구별하려고 <보리자나무>라 합니다
보리자나무 열매
내소사는 절 입구에 한 그루
절 내에 한 그루 커다란 느티나무가 두그루가 있습니다
내소사는 노랑상사화(개상사화)도 그득했습니다
<개상사화>는 노랑상사화로 불리는데
꽃술은 수술 6개에 실처럼 생긴 하나의 암술이 보이네요
하산길, 이제 속세로 내려갑니다
순간 사람이 없는 호젓한 길이 되었네요
그래서 집사람을 모델로 재빠르게
한장 담아보았습니다
내소사를 나와서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사람의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격포에 잠시 들렀습니다
채석강은 이십오륙년 전 제가 바로 이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던 곳이라 들러 보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인 나무는 키도 크고 더욱 번성했네요
나머지는 그대로였습니다
필력을 닦으려
80년대 전국을 돌며
현장 스케치했던 그림중 하나입니다
사진과 닮았나요
세월이 이렇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어쩜
우리의 곁에 함께 있는 것인데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지나보면
모두 아름다우니 말입니다
짧게 다녀온 부안여행이었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글 사진 -칡뫼 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