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10

복사꽃

아침 일찍 작업실에 내려와 마당청소를 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움츠렸던 복사꽃이 오늘 보니 환하게 피어있다.맞아 이맘때였어. 난복사꽃만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ㅡㅡㅡ 아침에 보니 정화수가 솟구쳐 ‘하늘 고드름’이 되어있었다. 그날 밤에도 할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비셨다. 두 손을 모아 빌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주문처럼 무슨 말인지 하셨다. 가끔 '천지신명'이란 말이 들리기도 하고 얼핏 '비나이다' 소리도 들렸다. 궁금해 쪽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여 보았지만 소리는 더 들리지 않고 절하는 모습만 보였다. 사락사락 내리던 싸락눈이 포실한 함박눈으로 변할 때쯤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오셨다. 내복차림으로 반가워 폴짝 뛰는 나를 힘껏 안아주셨다. 머리 위에 내렸던 눈이 녹아 비녀..

장기판의 졸

요즘 가을 전시 준비로 광장 이후 작업실에 박혀 있다. 그림 주제가 현실과 현재이다 보니 세계의 흐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도 관심사 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내란 사태 후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게 되니 분노가 치민다. 속고 산 것 아닌가? 그동안 나라 시스템을 믿고 순진하게 산 세월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산에 들면 낙엽 쌓인 숲이 아름답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 이런저런 벌레와 굼벵이, 지내, 들쥐 등 낙엽 아래 살며 어둠을 즐기는 생명들이 많다.인간도 마찬가지다. 은밀하게 감추고 자신들끼리 공유하며 즐기는 어둠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뭇 동물들이야 약한 자신을 보호하려고 숨어들었다지만 이들은 다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꾸린다. ..

카테고리 없음 2025.04.14

붓 거치대

붓이 하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밟혀붓거치대 후다닥 짰다반듯하니 이제 어렵게 붓 찾을 일도 없겠다. 빨강물감 파랑물감 쓰던 붓은 붓대로 쓰면 된다. 섞일 일도 없다. 세상일도 그렇다. 어지러운 세상이면판을 새롭게 짜야한다. 물론 판을 짜는 목수는 목공 실력이 있어야 한다! 톱질도 해야 하고 망치질도 해야 하니 말이다. 주요한 건 머릿속에 만들어질 판의 모습도 그릴 줄 알아야 한다.ㆍ칡뫼 붓거치대 만들다ㆍ

카테고리 없음 2025.04.12

개화산

오랜만에 개화산을 지인들과 새벽에 올랐다. 어제 내린 비로 산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수년 전 만나 홀로 즐기던 웃는 돌도 보고 싶고 한창인 참꽃 진달래도 보고 싶었다.어수선했던 마음 달래고 일상을 찾기 위한 나름의 산행이었다.오르다 보니 이리저리 굽은 나무도 만났다. 오늘따라 감회가 남달랐다. IMF때 만나 힘을 얻었던 나무다.죽을 만큼 힘들었겠구나. 하지만 굴곡을 넘어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이 오늘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였다. 한편 땅바닥에 붙어 옹기종기 하얗게 핀 남산제비꽃은 또 어찌나 반갑던지!큰길만 바라보는 행인은 구석에 핀 아름다운 꽃을 놓친다. 정치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바닥에 피는 야생초, 흙먼지 속에서도 얼마나 끈질기고 아름다운가. 마찬가지로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민초, 민중의 행..

카테고리 없음 2025.04.06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불면증이 도졌나. 오늘같이 좋은 날도 한밤중에 깼다. 생각해 보자 누가 윤석열을 만들었나? 나다. 내가 만든 괴물이 아닌가? 나는 아닌데 안 찍었는데? 저쪽 것들이 만들고 나라를 이리 어지럽혔다. 서로 손가락질이다. 과연 그럴까? 결국 저들뿐만 아니라 내가 뽑은 인물 또한 윤석열인 것이다. 그에게 투표를 안 했어도 그는 우리 공동체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 모두의 잘못인 것이다.난 이 점이 슬프다. 왜 우리는 늘 일을 만들고 뒤늦게 이리 고생할까?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구조가 문제 아닌가? 썩은 수도관에는 아무리 맑은 물을 흘려보내도 끝에 나오는 물은 녹물이다. 꼭지에 필터를 달고 살면서 '세상이 더러워도 나는 맑은 물 마신다'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그래 그리 살다..

카테고리 없음 2025.04.05

4월

오늘이 4월 1일이다.4월만 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문장이 하나 있다.'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이다. 이 문장은 알다시피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사실 원문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다. 헌재가 4월 4일 윤석열 내란사건에 대한 평결을 한다고 공지했다. 만우절이어서 잠시 당황했다. 도대체 믿을 것이 없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임을 알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파면 선고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기도하고 있다.우리의 현대사에는 나라를 빼앗긴 슬픔 속에 저항으로 1919년 3.1 운동이 있었고그 힘으로 4월 11일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광복 후에는 1948년 제주 4/3 민간인 학살사건이 있었고 지금..

카테고리 없음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