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과 14일 여의도 집회 참석 이후 마음은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계엄이라니 도대체 이런 일이 쉽게 자행되는 현실에 수긍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할 목적으로 국민에게 총칼을 겨눈 자들이다.
언제든 나라도 팔아먹을 자들이다.
우리 공동체는 이런 현상을 예방할 없는 사회인가? 눈치 빠르고 똑똑하다는 그 많은 학자 지식인 정치인들은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구한말 나라가 망할 때 자결을 한 매천선생을 생각해 본다. 익히 교과서에서 배운 데다 나름 조선 초상화를 공부하며 석지 채용신 선생이 그리신 매천 선생의 초상을 대한지라 낯설지 않다. 하지만 다시 찾아 공부를 해봤다. 돌아가시기 전 남긴 유서다.
나는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허나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 황천에서 받은 올바른 마음씨를 저버린 적이 없고 아래로는 평생 읽던 글을 저버리지 아니하려 한다. 길이 잠들려 하니 통쾌하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가 죽는 것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
(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
소주에 아편을 타 마시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4편의 절명시를 남기셨다.
그중 널리 알려진 한 줄이다.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밤 등불아래 책을 덮고서 옛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서 지식인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매천야록으로 알려진 매천 선생의 자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당대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이다. 목숨을 던질 만큼 확고한 공동체, 나라를 향한 충성심의 발로였다.
지금은 어떤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댄 내란 세력을 잉태한 국힘당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다. 하바드를 나오고 서울대를 나오면 무엇하느냐 말이다. 개인 영달에 취해 이권 챙기기에 급급하다. 역사를 보더라도 누구보다 지식인을 우러러보는 착한 국민들이다. 그 점을 이용해 위치를 점하고 나라를 결단 내는 단계까지 왔다. 지식인으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잊은 자들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추방이 답이다. 관직은 물론 모든 일에서 털어내야 한다.
넌 뭐 했냐 물을까 봐~
2019년 예술가들이 뭉쳐 검찰이 일 저지른다고 경고했었다
http://www.inven.co.kr/board/webzine/2097/1308912
아래
석지 채용신이 그린
매천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