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아저씨 용재아저씨 김 형 구 내 고향 갈산리가 나의 일터다. 서울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길, 일찌감치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큰길을 벗어나 농로로 접어드니 지게에 잘린 소나무 두어 개를 지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 용재아저씨다. 풀린 것인지 안 맨 것인지 땅에 끌리는 지게 끈이 세상 바.. 발표된 수필 2013.12.03
추억이 담긴 그림 한 점 추억이 담긴 그림 한 점 김 형 구 오랜만에 처가를 찾았다. 인사드리고 건넛방에 들어가니 벽에 낯익은 작은 그림이 보였다. 소꿉친구처럼 반가웠다. 이십대에 내가 그린 그림이었다. 한 뼘 높이에 폭은 두 뼘 정도로 멀리 섬이 늘어서 있고 그 앞으로 고깃배와 점점이 박힌 김발장대, 가.. 발표된 수필 2013.12.03
투르게네프의 참새가 된 아내 투르게네프의 참새가 된 아내 외환위기 시절이었다. 사업이 기울자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거기에 발행한 당좌수표의 부도로 수배자 신세가 되었다. 도망 다니며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나에게 세상은 어두운 먹색이었다. 집을 비운지 석 달째, 가족이 그리웠다. 밤늦은 시간, 그간의 사정.. 발표된 수필 2013.12.02
할머니의 기다림 할머니의 기다림 김형구 아침에 보니 정화수가 솟구쳐 ‘하늘 고드름’이 되어있었다. 그날 밤에도 할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비셨다. 두 손을 모아 빌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주문처럼 무슨 말인지 하셨다. 가끔 '천지신명'이란 말이 들리기도 하고 얼핏 '비나이다' 소리도 들렸다. 궁금해 쪽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여 보았지만 소리는 더 들리지 않고 절하는 모습만 보였다. 사락사락 내리던 싸락눈이 포실한 함박눈으로 변할 때 쯤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오셨다. 내복차림으로 반가워 폴짝 뛰는 나를 힘껏 안아주셨다. 머리 위에 내렸던 눈이 녹아 비녀를 적시고 있었다. "아이쿠 내 새끼" 할머니의 토닥거림에 그때서야 나는 다람쥐처럼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눈이 소복이 내리고 겨울밤은 깊어갔다. 동네 개가 심하.. 발표된 수필 2013.12.02
고승을 찾아 갔다가 부처님을 만나다 고승을 찾아 갔다가 부처님을 만나다 김 형 구 나의 이십대 시절 이야기다. 회의와 불만, 성취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한 권의 책, 법정의 <무소유>였다. 읽고 또 읽었다. 깊은 감명을 주체할 수 없었다. 스님을 만나야겠다.. 발표된 수필 2013.12.02
색계色界 색계 色界 겨울아침, 바람 한 점 없이 맵다. 마당 한쪽 장작더미 위에 앉은 곤줄박이 한 마리, "짹 재짹" 동료를 부르는 소리가 송곳처럼 허공을 찌른다. 꼬리를 위 아래로 까닥 까닥, 경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지런한 몸짓, 마당을 오르락내리락 먹이를 줍는다. 뒤 따라온 또 한 마리, .. 발표된 수필 2013.12.02
2013년 <에세이문학 >봄호 완료추천 <에세이문학> <당선소감> 고승을 찾아 갔다가 부처님을 만나다 김 형 구 나의 이십대 시절 이야기다. 회의와 불만, 성취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한 권의 책, 법정의 <무소유>였다. 읽고 또 읽었다. 깊은 감명을 주체.. 발표된 수필 2013.03.09
나의 외할머니 나의 외할머니 김 형 구 벌써 며칠 째 비가 내린다. 장마다. 1956년 여름, 음력으로 유월 열 이튿날 이른 아침. 앞마을 '갈뫼'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머리에 보따리를 인 채 건넛마을 '배루리'를 향해 걷고 있었다. 길섶에는 새벽까지 내린 비로 호박잎도 축 늘어졌고 며칠 전까지 흐드러지게.. 발표된 수필 201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