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할머니
김 형 구
벌써 며칠 째 비가 내린다. 장마다.
1956년 여름, 음력으로 유월 열 이튿날 이른 아침. 앞마을 '갈뫼'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머리에 보따리를 인 채 건넛마을 '배루리'를 향해 걷고 있었다. 길섶에는 새벽까지 내린 비로 호박잎도 축 늘어졌고 며칠 전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개망초도 비바람에 이리저리 넘어져 있었다. 보따리에는 미역이며 태어날 손자에게 줄 기저귀감 천도 있었다.
오五리 길을 걸었는데 이제 눈앞에 닥친 '앞내'가 걱정이었다. 요 며칠 내린 장맛비로 물이 적잖이 불어 있었다. 얼마 전 장날에는 사돈댁에 잠시 들러 만삭인 시집간 딸을 보고 왔었다. 엊저녁에는 '배루리'에서 피사리 품앗이를 하고 돌아온 황 서방으로부터 딸이 산기가 있어 오늘 낼 한다는 소리도 들었던 터였다. 더군다나 내일 열사흘 날은 딸의 생일이었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내를 건너야했다. 물이 불어난 '앞내'는 전에 빨래하던 때와는 다르게 뻘건 황톳물이 넘실되며 흐르고 있었다.
내를 가로지른 보洑가 있던 자리를 찾아 살며시 발을 내 디뎠다. 물살이 거칠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내 딛다 아니다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되돌아가기엔 뗀 걸음이 많았다. 건너야 딸도 만나고 아기를 낳았다면 손주도 볼 것이 분명했다. 발끝에 힘을 줬지만 그만 세찬 물살에 미끄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였다.
"아이쿠"
엉겁결에 나온 외마디 소리. 물에 떠내려가며 여인은
"사람 살려"
소리를 질렀다. 죽느냐 사느냐 기로였다. 딸은커녕 손주 얼굴 한번 못보고 이 세상을 뜨나 싶었다. 마침 논 물꼬를 보고 있던 아랫마을 박 서방이 논두렁길을 걸어오던 아낙을 눈 여겨 보았던 터였다. '냇물이 불었을 텐데'하며 걱정하던 차에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와 여인을 겨우 건져냈다. 아낙은 무사했고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젖은 몸을 한 여인은 그 와중에도 보따리를 가슴에 꼭 안고 있었다.
그때 목숨 걸고 '앞내'를 건너오신 분이 나의 외할머니시다. 나는 그날 새벽 빗소리를 들으며 태어났다.
이 이야기는 외할머니한테 들었던 나의 탄생이야기다. 이승과 저승을 힘겹게 건너셨고 거기에 첫 번째 외손주로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내가 어른이 되고도 나만 보면 하시던 되새김질 말씀에는 그때의 기쁨이 빛바래지 않고 배어 있었다. 그 뒤 바삐 살면서 잊고 지내던 생일도 장마철만 되면 떠오르곤 했다.
이제는 이렇게 장맛비가 내리면 내 생일보다도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진한 그리움이 되어 떠오른다.
2014 창작산맥 봄호
얼굴 장지에 먹 1983년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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