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수필

2013년 <에세이문학 >봄호 완료추천

칡뫼 2013. 3. 9. 13:19

                                                             

                                                             <에세이문학>

 

 

<당선소감>

 

 

 

 

 

 

            고승을 찾아 갔다가 부처님을 만나다

 

                                                                                                                                                                  김 형 구

      나의 이십대 시절 이야기다. 회의와 불만, 성취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한 권의 책, 법정의 <무소유>였다. 읽고 또 읽었다. 깊은 감명을 주체할 수 없었다. 스님을 만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불쑥 길을 떠났다. 내 배낭에는 먹, 작은 벼루와 화선지, 야외용 이젤과 스케치북 그리고 젊은 날의 치기가 들어 있었다.

      서울에서 구례까지는 기차를 탔다. 거기서부터 버스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화개장터에서 내렸다. 쌍계사에 있는 불일암佛日庵에 가기 위해서였다. 눈앞에는 황소처럼 엎드린 지리산. 그 자락을 굽이굽이 감돌아 나가는 벚꽃 길. 그리고 밤새 내린 비로 힘차게 흐르는 냇물과 상큼한 바람, 투명한 하늘. 거기에 흩날리는 꽃잎이 나를 무작정 걷게 만들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십여 리나 되는 꽃길을 마냥 달떠서 걸었다.

      그렇게 해서 한참 만에 절에 도착했다. 그런데 젊은 스님 한 분이 캔버스에 절집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스님이 먹으로 달마도를 그리는 건 보았지만 기름내 나는 서양화를 그리는 것은 의외였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스님은 내 배낭에 꽂혀있는 이젤을 보고는 말을 받아주는 것 같았다.

      처음은 그림이야기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스님이 당시 한창 베스트셀러가 된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를 화제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격론을 벌였다. 주인공 지산법운을 놓고 성불하는 방법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깊은 산속 도량에서 스님과 논쟁을 벌인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사건이었다. 젊은 치기 때문이었으리라. 한참 만에 토론을 접고 갈 길이 먼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쌍계사를 뒤로 하고 험한 비탈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서야 불일암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법정스님이 계시지 않았다. 불일암은 쌍계사 말고 송광사에도 있으며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계시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정보도 부족했지만 덜렁대는 나의 성격 탓이었다. 허탈하고 낭패스러웠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암자의 스님이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불일폭포가 볼만하니 구경이나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암자를 나섰다.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그러나 폭포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멈춰선 채 땀을 닦고 있는데 어디선가 땅을 흔드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우 웅. 북소리도 같고 산이 우는 소리도 같은 그 알 수 없는 음향이 나의 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물안개 때문인지 길가의 풀과 바위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다시 몇 걸음을 옮기자 드디어 폭포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불일폭포였다. 이단으로 꺾여 내리는 폭포의 장쾌한 추락. 나는 그 장엄함에 넋을 잃었다. 짐을 내려놓을 생각도 못한 채 서서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가 정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거대한 물줄기는 동의 표상 같았다. 정이 동을 누르고 있는 것이 침묵이요 평온이라면 동이 정을 압도하는 것은 질타고 웅변이었다. 푸른 듯 희고 흰 듯 푸른 물줄기는 산골짜기를 찢고 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거침없는 낙하의 장렬한 기상 앞에 나는 지극히 왜소한 존재로 오그라지고 있었다. 몸이 점점 작아져 사라질 순간인데 내가 안고 있던 그 좌절과 불만, 회의 같은 것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가슴은 구멍이 뚫리고 머리가 날아가 버린 듯, 나는 무아의 경지 그 자체에 함몰되어 있었다. 폭포는 기세등등하게 일거에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내게 일갈一喝하는 것이었다.

     “내려놓아라. 네가 짊어진 그 짐부터 내려놓아라. 깨끗이 씻어내라. 모두 버려라. 나를 봐라, 포기요 추락이 아니다. , 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일과 합일의 바다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동안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소리의 힘에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폭포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폭포는 이미 내 몸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무소유의 가르침을 불일폭포는 온 몸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폭포로 현신하여 나를 일깨우는 부처님. 한 말씀 듣고자 고승을 찾아 나섰던 나는 뜻밖에 부처님을 만난 것이었다.

       나는 불일폭포에서 받은 감동을 가슴속에 담아가지고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바로 화선지에 폭포를 옮겨 놓았다. 지금도 그때의 가르침을 담은 그림은 내 방에 걸려 있다. 살면서 가끔 지나치게 현실에 집착할 때면 그때의 그 목소리로 일갈 하신다.

       “무거우냐? 그 짐부터 내려놓아라.”

                                                                 2013<에세이문학> 봄호 완료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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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료 추천 심사평>

    

김형구<고승을 찾아 갔다가 부처님을 만나다>는 과도한 욕망의 무게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방황하던 젊은 시절, <무소유>라는 책이 계기가 되어 깨달음을 얻게 된 일화를 그린 글이다. 논리로 얻고자 했던 무소유를 묵묵히 온몸으로 보여준 불일폭포 앞에서 화자는 문득 대자연이 곧 부처임을 깨닫게 된다. 갈등을 고조시키는 젊은 스님과의 논쟁이 글에 탄력을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암시하는 결미부분이 여운을 남긴다. ‘비움이라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적절한 소재 선택, 탄탄한 구성, 절제된 묘사로 잘 살려 내었다. 사유 깊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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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속에 나오는 그림 <불일폭포>

 

 

            불일폭포 

                    18.5 x  55   cm 

                      화선지수묵담채  

            1981년 작

                칡뫼 김 형구

           작가소장

 

 

 

인물부분을  확대한 모습입니다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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