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5계를 읽고
인간은 시공을 초월해 살 수 없는 존재다. 시간과 공간, 다른 이름으로 계절과 자연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속절없이 가버리고 다시 돌아오는 계절을 따듯한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 계절에 대한 관조와 성찰의 시선은 자연 속에서 그리움이란 또 하나의 시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4계절에 더한 그리움, 즉 사랑의 5계다. 시인의 눈길은 봄부터 시작되는데 맑은 눈을 지닌 시인의 안목이 따사롭다.
아무리 철없이
눈이 맞았더라도 그렇지
하루아침에
그다지도 해바라지게
웃어댈 수 있느냐?
동네 아이들 다 보는
남의 집 담벼락 아래서
수줍잖게 일제히
흐드러질 수도 있는 것이냐?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싸놓고도
남모르는 체하는
봄.
봄.
봄, <봄2> 전문
봄에 태어난 작가는 담장 밑에 흐드러지게 와있는 봄을 사랑하는 연인들의 감출 수 없는 환한 미소와 몸짓으로 묘사했다. 봄빛이 산란하는 담벼락의 화사함을 눈부시게 그려낸 시선이다.
봄바람에 꽃잎이 날리는데...
정신없이 날리는데...
봄바람은
그저...
휘파람만 불었을 뿐이라고...
저놈…
잡으려니
저만치 갔네.
<봄바람 3> 전문
봄바람은 알고 보면 언제나 좌충우돌 부는 바람이다. 이런 봄바람을 휘파람 불며 능청떠는 젊은이 모습으로 그려내는 탁월한 안목. ‘저놈 잡으려니 저만치 갔다.’로 결미 짓는 해학적 완결성 또한 흥미롭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즐겁고 희망찬 모습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 기억하는
아버지의
봄 농사철은
늘 가뭄이었다.
그날
헛바퀴만 돌다 꺼진
양수기 위에
밤새 내린 아침이슬을 /중략 <아버지의 봄>
이렇게 아버지의 봄을 노래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희망에 찬 봄이건만 괴로운 삶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괴로운 순간을 넘어 희망의 물길이 오는 것을 어찌 보았을까 반문한다. 시인은 대상에 대해 관조와 묘사를 넘어 사회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놓쳐선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중략 /산마을 무너진 담장에
시든 달맞이꽃을 보고
한줄기 소나기 내려
일으켜주고 가는
노을 진 새털구름처럼
살 수 있다면… <소원> 부분
<소원>이란 시에서 그 점을 엿볼 수 있는데 시인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타적 삶을 살고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아성찰이다. 글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묘사의 즐거움을 주는 글과 달리 자아성찰의 시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늙고 허름한 사내가
마당에 나 뒹구는
마른 잎을 씁니다
사내의 인생처럼
그러담은 잎보다
바람에 날아가는
잎이 더 많은
가을이,
담기지 못한 인생처럼
마당에
나뒹굽니다. <가을 >전문
예닐곱 살 때였다.
형들 따라서 갯고랑으로
멱 감으러 갔다가
미끄러져 깊은 물에 빠졌다.
혼자 허우적거리다
마지막 숨이 꺼져갈 무렵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갈대였다.
30여 년이 지나
다시 찾아간 그 자리에
누가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삐쩍 마른 손에
흰머리를 안고서… <갈대> 전문
/노란 털실로
한 땀 한 땀
옷 지어
밤새
이슬처럼 내리는
전단지에 박힌
아이의 시린
허벅지를
덮어준다네 <강남역 앞 은행나무> 부분
상기 시에서 보듯이 가을이 되면서 시인의 시선은 좀 더 깊고 내밀해 진다. 날리는 낙엽에서는 미처 거두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의 회한을 노래한다. 또한 갈대에서 죽을 뻔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자신을 살려준 갈대를 세상의 은인으로 흰머리를 인 부모며 주변 인물들을 환치하는 탁월한 시작법도 보여준다. 어쩜 세상이 모두 은혜인 듯한 시선이다. 노란 은행잎이 덮고 있는 전단지를 보면서 그 안에 있는 아이를 볼 줄도 안다. 시인의 눈은 이미 대상을 뚫어보는 힘을 지닌 지 오래다.
(조각한다는 것은
알맹이를 찾아 끊임없이
껍데기를 까부르는 일) <조각한다는 것> 부분
상기한 시 <조각한다는 것>에서 시인은 조각이란 끝없이 알맹이를 찾는 일이라 했다. 시인의 시 작업 또한 세상의 알맹이를 찾는 몸짓이리라. 그래서일까. 그 몸짓은 종교적 성찰로 이어진다.
밟고 가시든지
지고 가시든지……
돌아서 보니
길 위에 넘어진
십자가를
들풀이 덮었습니다.
내가 놓고 갔던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길 위에 십자가> 전문
결국 십자가는 자신이 놓고 간 것이란 종교적 성찰은 성경책을 읽거나 외어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경지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워하며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오랜 경험이 내린 앙금만이 그릴 수 있는 시심이다. 그래서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세상을 읽어주는 경전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 <담쟁이>로 감상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키 자란
담쟁이에게
담벼락이
말한다
이제야 보니
너를 일으키는 게
내가 서는
길이야
오후의
긴 햇살이
듣고서
간다. <담쟁이> 전문
난 이 시를 읽는 순간 수많은 담쟁이 시를 만난 중에 최고의 수작을 만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너를 일으키는 게 내가 서는 길이야’ 이 한마디 말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세상사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상대를 일으키는 삶이 곧 나를 일으키는 길이다. 얼마나 명쾌한 답인가.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시인의 시에 흐르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사랑이다. 시인의 그리움은 결국 세상을 향한 끝없는 사랑이다. 사랑의 5계인 것이다.
-수필가 김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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