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울 갤러리
9월 30일(수)~ 10월 6일(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23-2 T 02 - 720 - 0319
색을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흑백영화나 흑백텔레비전을 보다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나 컬러텔레비전이 나오자 대중은 열광했다. 세상이 이리 아름답단 말인가. 축복이요 기쁨이었다.
모두가 색을 즐겼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린 색의 범람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그림이 색을 위주로 그려지고 옷과 자동차 건물까지도 색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간판에도 색이 난무해 도리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하얀 종이 위에 오로지 연필로 그린 작품이 있다. 색이 넘치는 시절 모든 색이 여기에 들어있다는 단색미학이다. 바로 화가 허예의 작품인데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일찌감치 모노크롬작업에 몰두해 왔다. 단색화 작업은 대상을 단순명료하게 정리하는 특징이 있는데 작가는 그를 뛰어넘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현대인에게 현실은 어쩌면 회색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현실을 도피하고자 했을까. 그녀의 작업방향은 기본적으로 모노크롬을 기본으로 한 초현실세계다. 그녀의 그림이 보여주는 세계는 유달리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절망스럽거나 허무하지도 않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동적이기보다 정적인 초현실세계다. 이는 삶을 잠시 되돌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정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고루 등장하는 건축물이 있는데 자연 경치와 다르게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신의 피조물인 자연은 어쩌면 관조의 대상이다. 대체로 경치그림은 시선을 머물게 하지만 나무 뒤나 산 너머로 걸음을 걷게 하지는 않는다. 대신 건축물은 인간의 구조물이다. 벽이 있고 문이 있고 계단이 있다. 벽 뒤를 엿보고 싶고 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고 계단을 걷게까지 한다. 그녀의 작품이 색 없이도 단조롭지 않은 이유다. 또한 공간을 분할하여 새로운 시점을 제공하는데 화폭 속에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다. 이 다양한 공간이 묘하게 어울리며 막연한 그리움이나 꿈의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데 이런 점이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화가는 태생적으로 꿈을 꾸는 존재다. 작가 허예는 현실을 벗어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상상이나 망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꿈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은 컬러사진 속에서 흑백사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우리는 그 흑백사진 속에서 망각 속에 묻어뒀던 아련한 심상의 추억을 만날 수 있다. 심상은 구체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나름 형상화 시켜 보여주고 있다. 화가 허예가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점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좀 더 내밀해지고 넓어져서 우리에게 또 다른 미의식의 지평을 열어줬으면 한다. 벌써 다음 작업이 기대된다.
칡뫼 김구 (화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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