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칡뫼 멋대로 읽기

그림, 칡뫼 멋대로 읽기(5)

칡뫼 2016. 2. 24. 21:50





































                                                       위의 그림은 수화 김환기 (1913-1974)선생의 작품이다







     사람은 대상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 어떤 사물은 자기와 같은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꽃이 그렇다. 꽃다발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을 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나무를 사랑하고 물과 돌을 사랑하고 달과 별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래서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은 그 이상의 의미로 읽히며 보는 이에게 나름의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오늘은 수화 김환기 선생의 그림을 들여다본다. 그의 초창기 작업은 사물의 형태가 살아있는 구상회화다. 피난열차나 달항아리, 사슴, 매화나무 등 누구나 보아도 알 수 있는 소재다. 다만 그 형태를 단순화 하고 선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색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 작업이 계속되면서 결국 형태는 사라지고 점과 선이 남은 작품으로 거듭 난다. 자연을 사랑하는 따듯한 동양정신 특히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선생의 작품은 어렵지 않고 편하게 다가온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어머니 품 같다.

        그림은 어렵다고 말하는데 특히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사실 세상을 보는 작가만의 질문이요 대답이기에 어떤 면에서 공부가 필요하다. 가존 미의식으로 재단하면 낭패를 볼 때가 많다. 뭐든 들춰보려는 현대인에게 해석이 안 되니 난감하다. 아니 이해하려는 몸짓을 거부하는 것 또한 현대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냥 느끼라고 하는데 그러면 무엇을 느낄까. 뭔가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다. 나만 모르는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는데 왜 나는 감동이 없지. 미술관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당황해 본 경험이 있게 마련이다. 결국 미술관을 찾는 발걸음을 더욱 어렵게 한다. 평론 또한 감동이 없는 작품을 느낌이 있는 것처럼 써서 작품을 풀기 힘든 수학문제로 만들기도 한다.

     거기에 비해 수화 김환기 선생의 작품은 쉽게 젖어든다. 그 이유가 뭘까. 결국 선생의 그림은 원초적으로 대상의 아름다움에서 출발한 그림이다. 즉 작가 자신이 느껴오던 초기 정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잘 빚어낸 비구상의 세계이다. 결국 우연히 만들어진 세계가 아닌 거듭된 노력으로 이룬 필연의 결과 추상세계인 것이다.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사진 맨 아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구현한 것이 아닐지라도 낯설지 않으며 아련한 감성의 덩어리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데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하지만 독창적인 것은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나만의 외고집이 아니라 지극히 이타적인 공감에서 출발한 자기만의 그릇이다. 우린 수화선생의 작품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다.

                                 

                                                                                    -칡뫼 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