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 그림은 화가 박생광(1904-1985)의 작품이다
우선 그림을 보면 느낌이 강렬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색이 강한 것이 첫 번째요 굵은 선묘와 평면적인 기법도 강한 인상을 더해주네요. 이런 그림을 장지나 화선지에 색이 얇게 스며들게 그리는 담채화와 달리 채색화라 부릅니다.
우리 전통에 채색이 많이 쓰인 곳은 단청이 있습니다. 회화에서는 민화나 절집, 사당 뒤 벽화가 채색기법이며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고분 벽화도 채색기법입니다. 색동옷도 즐겨 입은 것을 보면 우리민족은 색을 멀리하지 않고 즐겨 쓴 민족이 분명합니다.
그림을 들여다보죠.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림은 우리 무속신앙이 주제인 것이 틀림없네요. 작가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란 신념을 가진 듯합니다. 사실 이 그림은 당시 동양화단에서 색을 멀리하고 수묵운동이 강했던 시절에 그려진 그림들입니다.
무당이 부채를 펴고 방울을 흔들고 있고 아래로는 환자로 보이는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구성 자체만 봐도 민초에 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두 번째 그림도 우리 선조들의 민속생활과 그에 따른 기복이랄까. 우리 삶 깊은 내면에 잠재되어 내려온 전통적인 종교관을 형상화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두 작품은 말년에 역사적인 사실을 작가의 시선으로 구성한 전봉준, 그리고 명성황후란 작품인데 둘 다 민족의식이 투영된 작품입니다.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색도 우리 전통의 오방색(황.청,백,적,흑)을 주로 사용했죠. 그 색의 원초적 색감을 구현하려고 부단히도 애쓴 모습이 보입니다. 결국 결과물로 작가의 깊은 공력이 활화산처럼 분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그림을 보면 작품 전봉준은 당시 시대상을 평면기법으로 화폭에 목판화를 새기듯 강한 선묘와 색이 잘 조화된 작품이죠. 그 아래 작품은 당시 국모였던 명성황후가 목숨을 일본 낭인에게 빼앗기고 불길 속에서 시신이 태워지던 그 절절함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색과 선묘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색의 본질을 잘 드러낸 수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작가도 초기작부터 계속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려고 오랜 세월을 녹여온 작가였죠. 수학기 일본에서 공부하며 채색기법을 터득했는데 그것으로 한국의 정서를 그려내려고 귀국 후에 많은 공력을 쌓았습니다. 어려서 청담스님과의 교류도 있던 작가는 인도의 불교유적지도 다녀왔고 미신이라 천대 받던 토속신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업도 했죠. 결국 그런 노력의 결과는 70 이란 나이를 넘어 노년에 그의 작품은 완결을 이룹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강렬한 색채, 담대한 평면구도. 민족적 미의식의 구현, 역사적 사건의 형상화로 등 단단한 자기세계를 구축합니다.
먹그림이 풍미하던 시절, 81년 안국동 백상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전을 보고 받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1층에서 2층을 여러차례 오르내리던 20대 청년을 곱게 봤던지 저를 불러 차를 함께 마셨던 기억이 나네요. 전통화단에서 박생광 화백은 천경자 선생과 함께 채색화의 커다란 두 봉우리로 불립니다.
-칡뫼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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