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 그림은 우리나라 김동유 작가 (1965년~)의 그림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뭘 그렸는지 쉽게 눈에 들어온다. 마릴린 먼로라든가 김일성이나 케네디, 박정희 대통령, 고흐의 자화상도 등장한다.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대중적 이미지다. 그런데 그의 인물 그림은 조금 다르다. 모자이크기법이랄까. 긍금하여 가까이 가보면 무수한 작은 얼굴이 수없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된다.
예전에 컴퓨터 초기 시절에 글자로 새긴 모나리자 상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거다. 어두운 눈동자 부분은 많은 활자가 쓰여 지고 다른 부분은 약하게 처리하여 멀리서 보면 얼굴인데 가까이 가보면 활자인 컴퓨터로 그린 그림이었다. 작가의 그림도 그런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보면 된다, 다만 그의 작품은 기계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그린 공력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고생스럽게 그려서 작가는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관람자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화가는 분명 자기의 생각을 작품에 투영한다. 그냥 생각 없이 그리는 것도 '생각 없이 그리는 동작'이 작가의 생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세상이다. 작가는 작은 이미지를 그려 또 다른 큰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 얼굴 속에는 케네디가 있고 케네디 얼굴 속에는 마릴린 먼로가 있다. 작품은 보는 이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또 다른 작품 김일성 얼굴을 드러내는 숨은 얼굴은 마랄린 먼로다. 가장 폐쇄적인 나라 북한 김일성 얼굴에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릴만한 인물 마릴린 먼로를 그려 넣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 대통령 얼굴 뒤에 김일성의 얼굴이 있기도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김구선생의 얼굴로 그려진 것이다.
자 여기어 잠시 숨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세상은 늘 이중성 양면성에 젖어 있다. 우리의 내면도 이중성에 갇혀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과 그 이면의 세계는 상충하지만 서로 떠받드는 존재가 아닐까. 상상은 꼬리를 문다.
팝아트니 이중그림이니 디지털회화니 논리는 필요 없다.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저런 사유를 불러일으키면 된다. 그의 그림에서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보기는 쉬워도 알고보면 엄청난 공력의 결과로 그려지는 그림(아래 세부도 참조)이라는 점이다. 힘든 노동은 감동을 담보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작은 그림 수 천 개가 모여 큰 이미지 하나를 만들고 있다. 마치 세상 일이 밀알 같은 작은 흔적이 모여 역사를 이루듯이.
작가 나름의 세상 보는 눈, 철학과 사유를 명쾌하게 형상화 한 작가가 김동유다, 그는 우리나라 젊은 작가로 해외로부터 먼저 인정받았다.
-칡뫼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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