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 -다시 시작하며-
그림을 그려 오면서 그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결혼 하면서부터 아이들 양육과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크자 교육비 등 산적한 문제가 나를 압도했다. 그림만으론 생활이 안 되다 보니 그동안 한 일도 많다. 구멍가게, 표구사, 가구점, 공장생활, 오리농장, 축산물유통 등. 그러다 빚을 지고 파산 그림은 고사하고 목숨부지가 우선인 세월도 10여 년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림의 끈을 안 놓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몸은 지치고 머릿속은 늘 돈 문제가 지배했다.
생각해 보니 20대에 가장 그림에 열정적이었다. 그땐 그림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세월이었다. 전국을 돌며 스케치도 했고 미술서적을 탐닉했으며 때마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설한 현대미술에 대한 강의도 수료했다. 배운 이론을 검증하려고 틈만 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았다. 능력 있는 친구를 설득 미술관도 차려봤으며 흙먼지 날리는 시골이나 작은 동네에서 전시회도 열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일이지만 오로지 열정 하나로 해냈던 일이었다.
그런 세월이 다시 오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나이 육십을 넘어 그 꿈에 불을 다시 지펴 본다. 손 풀기에 10여년 세월을 보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기초부터 다시 해봤다. 삽화를 그려 정직한 묘사를 연습했으며 경치그림을 그리며 감정을 되살렸다. 하지만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늘 머리에서 요구하는 표현이 손에서 막혔다. 노력 덕인지 감사하게 요즈음은 예전만큼 손이 말을 들어준다.
대상묘사, 느낌그리기, 생각그리기로 차츰차츰 영역을 넓혔다. 무엇이 좋은 그림일까. 지금도 그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사실 답은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답은 분명 있다. 그게 보이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다. 우선 잊었던 우리 미술판을 다시 들여다봐야 했으며 강의실 순회도 쉼 없이 해야 했다. 다시 옛 친구들도 만났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미술을 이해하려고 세계적인 작가들의 공부도 나름 해 봤고 의문도 품어봤다. 공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길을 알고 나서는 나그네의 발걸음은 힘차다. 막연히 가고 보자는 걸음걸이와는 분명 다르다.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연이나 재능에 기대면서 이것이 길이라 외친 것은 아닌지. 참 많이도 헤맨 세월이었다. 길은 알고 보니 내 안에 있었다.
이제야 하루의 반 이상을 그림 생각만 하는 몸이 되었다. 이제는 술이나 놀이보다 그림이 우선이고 가족과 그림이 동격이다. 이것도 조만간 그림이 추월할 것이다. 나에게는 문학, 영화. 음악 등 모든 예술장르보다 미술이 우선이다. 타 장르를 즐기는 것은 오로지 나의 미술을 위해서 일 뿐이다. 이제 꿈에서도 그림이 보인다.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해야 돈을 만지는 세상이다. 화가라고 다를까. 적당히 재주로 덧칠해서는 절대 좋은 그림이 안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한다. 그림은 꼭 나만큼 그려지는 나의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끝없이 질문하는 존재란 말이 있다. 세상에 질문하는 질문지를 손에 꼭 쥐어본다. 나만의 생각으로 묻는다. 세상은 이런 게 아니냐고. 이런 게 세상이라고. 우문일지라도 묻고 싶은 것이다.
다시 그릴 수 있어 행복하다. 하루해가 짧다.
-생각을 정리하며 각오를 다진다-칡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