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스케치

어금니 발치

칡뫼 2018. 12. 21. 15:39


너를 살릴 수 없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결국 내 곁을 떠나는 구나.

딱딱하고 거친 것 마다 않고 다 받아주더니 지치고 힘들었구나.

넌 누구보다 단단한 몸으로 태어나 편히 쉬지도 못했지

몸이 두 쪽이 나도록 나를 지켜줘서 고맙다

 

하얀 얼굴로 네가 처음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너무 기뻤다.

뭐든 스스로 씹고 뱉을 수 있는 홀로서기의 증표이기 때문이었지.

돌도 씹어 먹을 수 있던 좋은 시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살다보니 억울한 일도 있고 감당하기 힘든 일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난 죄 없는 너를 힘껏 깨물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지

그 덕에 모진 세상을 헤쳐 나올 수가 있었어.

 

살며 힘든 일 하루 3번에 수시로 야근까지 하던 너.

하지만 주인을 잘못만나 냄새나는 술에 젖은 채

씻지도 못하고 잘 때도 많았지.

오죽하면 네 몸이 두 쪽이 났겠니.

그동안 맘고생에 넌 속에서부터 문드러졌더구나.

의사 말이 병이 깊어 너를 살릴 수 없다는 구나.

얼마나 힘들었니. 미안하다

 그동안 너를 제대로 대접 못한 내가 죄인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네가 사라지니 네 자리가 더 휑하니 허전 하구나.

네 친한 친구 설도 사라진 네가 궁금해

종일 네 있던 자리를 왔다 갔다 보듬으며 슬퍼하더라.

평생 함께하고 싶었는데 너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였다니

오호 통재라.

부디 못난 주인을 용서해다오..

잘 가거레이.

두 쪽 난 어금니를 발치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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