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다녀와서

정영신 장에 가자 출판기념시진전

칡뫼 2020. 11. 12. 15:51

 

 

어린 시절 다니던 고향 학교 앞에는 장터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장날 장터는 나에게 꿈의 동산이었다.
장터에 펼쳐진 하얀 장막은 어린 가슴을 펄럭이게 했다.
그 휘장아래 온갖 장사꾼들이 팔려고 내놓은 물건도 가지가지였다. 옷이며 신발 버선에 각종 대나무 제품. 성냥을 되에 담아 파는 분, 고무신을 때워 주는 분. 구멍 난 양은냄비나 주전자를 때워 주는 분. 커다란 가마솥에 곰탕을 끓여 파는 분 국수를 말아 파는 분, 풀빵장사, 색색이 물들인 옷감이며 털실. 온갖 동물들, 염소며 병아리 강아지. 토끼도 있었다.

대장간에서는 풀무질이 한창이고 뻥튀기 아저씨 목소리도 들렸다.
가끔은 발로 북을 치는 피에로도 나타나 읍내 극장 영화 선전도 했다.
아이들은 가라는 뱀장사 겸 약장사도 있었는데 뱀은 순전히 사람을 끌어 모으는 장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병마다 회충 촌충 등을 담아 놓고 약을 파는 회충약 장사도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온갖 잡지며 만화책을 펼쳐 놓고 파는 분도 계셨다.
어린 나에게 장터는 마법의 공간이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렌다.

장터는 우리 민족 삶의 원형질이다. 그 곳에서 필요한 것을 구했으며 물건을 내다 팔았다.
개인의 슬픔도 외로움도 털어버릴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의 의욕도 만들어준 공간이었다.
떨어진 이웃이 만나고 도시의 소식을 듣는 곳이었다.
그곳이 바로 신문이고 방송국이었으며 살아있는 책이었다.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도 장터였다.

그런데 그곳이 이제 점차 힘을 잃고 있다. 그러한 아쉬움에 사라지는 장터 풍경을 30여 년 째 추적해온 작가가 있다. 정영신 사진가다. 작가의 출판기념 사진전이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누군가는 기록해야할 유산이다. 갈수록 변하는 사회 구조 속에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책속에 오롯이 들어있다. 책을 읽다 보면 갑자기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장날 신발장수
꺼내 늘어놓다 한 나절
점심으로 뚝딱 국수 한 그릇
생글생글 옷가게 아줌마
빙빙돌려 타주는 달콤한
커피 한 잔
대낮까지 홀짝홀짝 마셔버리고

해병대 모자 맥아더 깜장안경 새빨간 머플러에
뭐든 부풀리는 뻥튀기 아저씨
호루라기 놀란 가슴 '뻥' 소리로 튀겨내면
하얀 연기 부푼 꿈도 어느새 사라진다.

한 켤레 또 한 켤레
몇 문이요 몇 미리요
껴요 편혀요
험한 길 함께 할 짝꿍 찾아 또 한 나절
어느 사이 저녁 되니 분위기는 파장일세
신어보고 만져보고 보기만한 신발들은
이리 감싸고 불쌍타 저리 보듬어
주인 닮은 '도라꾸'에 차곡차곡 되 싣는다

내일은 김포장, 모레는 마송장날
글피는 하성장에 하루 건너 양곡장
그 날이 그 날 같은
뱅뱅 도는 오일장날
펼치고 접다보니
하루 해가 또 저문다.
-칡뫼-





정영신 장에 가자 출판기념전
브레송 갤러리
11월 20일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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