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문학 가을호를 읽고서
대문 우편함에 두툼한 책이 꽂혀 있었습니다.
요즘 택배로 날아오는 책이 하도 많아 뭘까 궁금했는데 반가운 '에세이문학'이더군요. 수필 계간지는 소설책과 달라 누구의 작품부터 읽을까 잠시 생각합니다. 바쁜 일상사에 젖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짧은 글을 선호하게 되는데 결국 빨리 읽고 싶은 마음 때문이지요. 차분하게 읽을 여유조차 쉽지 않은 삶의 여백 사이에서 택한 독서 형태라 할까요. 우선 한두 편이라도 제대로 읽어야 책에 대한 예의를 갖춘 듯 마음이 놓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뒤에 모두 차분하게 읽지만.
글을 쓴 작가는 자신의 영혼을 형상화 하느라 쓰고 고치고 수많은 사유 끝에 한 편의 글을 내 보입니다. 거기에 비해 독자는 무소불위의 제왕처럼 글을 대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읽다가 내 팽개치기도 하고 다시 언제 읽을지 기약이 없기도 하죠. 독자도 작품을 대할 때 마음가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집으로 찾아온 낮선 사람을 대할 때 무례하지 않은 것처럼. 작품은 손님입니다.
이번 책에서 몇 편을 읽었는데 우선 이혜연 작가의 '차-암 곱소!'와 박경주 작가의 '염(廉)씨'를 읽고 나름 산다는 것에 대한 사유가 떠올라 몇 자 적어봅니다. 우선 이혜연 작가의 글은 친구 어머님을 문상 갔다가 우연히 떠오른 같은 병원에서 돌아가신 문화촌 아주머니의 이야기 입니다. 그분을 어머니와 함께 병문안 갔을 때 들은 '차-암 곱소!' 란 한마디는 이 작품의 전부입니다. 젊은이도 아닌 중장년의 아낙에게 하는 말 '차-암 곱소!'는 죽음을 앞 둔 사람이 살아 있는 생명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요. 곱다는 우리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죠. 그림이 참 곱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답다. 보기 좋다. 예쁘다. 행복해 보인다. 부드럽다. 착하다 등 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어쩜 희망과 꿈이 있어 보인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 , 살아있는 것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편 , 박경주 작가의 '염(廉)씨'는 젊어 맞선 보았던 의사 '염'씨를 딱지 놓고 다른 인생을 살아오다 30년이 흐른 뒤 들은 '염'씨의 소식에서 일종의 위안 어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알게 모르게 조금 남아 있던 미련을 떨 추어 버리는 마지막 문장에 작품의 전부를 실었습니다. 못 가 본 길도 알고 보니 그저 그런 길이었다. 그동안 이 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요. 가난에 밀려 살 때 어머니에게 들었던 푸념 섞인 말, "돈을 한가마니씩 벌고 나가 치료비도 안 들었쓰꺼인디" 이 말에 알게 모르게 약간의 미련 후회가 올가미 되어 살았던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지요. 하지만 그 말 뒤에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삶이 비록 힘들지언정 살아있는 것은 축복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의 참 고운 순간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크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은 지금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결국 두 작품 모두 누구나 자신의 현재를 쉽게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바깥세상에만 초점을 맞추며 사는 삶, 그러한 생각에 죽비를 내린 작품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우린 언제부터 자신보다 남을 쳐다보면서 살게 됐을까요. 이제 자신이 자신에게 좀더 깊이 사랑을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옆의 나무가 크는 것을 시샘하지 않고 작지만 스스로 꽃을 피우며 자신을 돌보는 들풀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이 참 고운 때이고 지금 사는 삶이 나에게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요. 지금 사는 삶이 별 의미가 없다 , '가보지 않은 길이 무조건 아름답다'란 생각은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가란 모름지기 사소한 일상이나 말 한마디에서도 나름 생각을 정리하여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줄 때
그 위치를 점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자신의 영혼을 씻기도 하지만 잊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던 삶의 지혜도 배우니까요.
책을 읽은 부족한 감상 이었습니다.
2011년 9월 7일 김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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