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이종화
빼빼로가 나왔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다. 가자, 형은 내손을 잡고 달렸다. 골목에는 이미 빼빼로를 손에 든 아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엿듣는 시늉을 하며 그 동그라미를 맴돌았다.
한참이 지났지만 누구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묘한 저항감이 조밀하게 형성되어, 날카롭게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대장이 입을 열었다.
“야! 너네 뭐야?”
“우리도 과자 하나만 줘.”
형이 두 손을 포개어 바가지처럼 만들었다.
아이들이 웅성댔다.
“재들 뭐야?”, “재수 없어.”
그러자 대장은 한 손을 천천히 들면서 순식간에 주변을 조용히 시켰다. 저런 대장의 몸짓은 늘 멋있게 보였다.
“야, 니가 뭔데?”
“하나만··· .먹고 싶어.”
"꺼져!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보다 못해 나도 거들었다.
“우리도 줘어”
“뭐 쬐끄만 자식들이.”
순간 침묵이 흘렀다. 모두 긴장했다.
“······”
“좋다. 하나만 주지. 대신, 너만 먹어.”
난 너무 좋아 입에 함박웃음을 머금곤 어쩔 줄 몰라 했다. 곁에 있던 형이 갑자기 내 손을 놓더니, 대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줘!”
“싫어, 넌 안 돼.”
“왜 안 되는데?”
“그냥 넌 안 돼.”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형이 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나는 형과 늘 같은 편이었다. 모두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형만 빼고.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그만 그 과자를 입에 넣고 말았다. 그제야 형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오물거리는 내 작은 입을 지켜보았다. 난 그렇게 형을 두고 원 안의 대열에 합류해 버렸다. 어쩌면 형은 나라도 먹어 다행이라고 생각 했는지는 몰랐다.
순간 어머니에게 손목을 곽 잡혔다. 우리 둘은 동네에서 가장 큰 가게로 끌려갔다. 여기들 있어라, 가게 안으로 사라진 어머니는 잠시 뒤 빼빼로를 한 통씩 사서 우리 손에 쥐어 주셨다.
어둡던 형의 표정은 순식간에 해맑게 변했다. 우물우물. 너무도 좋았나보다. 날 보고 연신 “종화야, 마딛지? 마딛지?”를 되풀이했다. “엄마, 엄마! 되게 마딛어요.” 늘 “맛있다”를 ‘마딛다’로만 발음하던 형이었다.
우리는 빼빼로를 들고, 일부러 그 동그라미 앞을 지나 집으로 갔다. 손을 꼬옥 잡고.
-----------------------------------------------------------------------------------------
이종화, 지금은 그의 작품으로 인해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작가지만 불과 얼마 전 까지 까맣게 모르던 수필가다. 나이는 80년생이니 30 대 초반이다. 그의 초회 추천작 ‘가면 무도회’(계간수필 2006년 겨울호)를 비롯해 바로 이어 추천완료한 작품 ‘고소공포증’(계간수필 2007년 봄호)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젊은 수필도 있구나. 젊은이다운 시선을 넘어 공감대가 큰 삶의 사유를 매끄럽게 그려낸 수작이 30대 초반의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아니라고 말로는 부정했지만 수필은 중장년의 문학(금아 선생님 때문일까?)이라고 알게 모르게 젖어 있었던 나의 시선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글은 유년시절 형제가 동네에 나가 놀다 일어난 골목풍경을 그리고 있다.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작품은 이미지 구축에 실패하면 기억에서 쉽게 사라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골목을 중심으로 누구나 한번 쯤 겪었음직한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으니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보면 골목대장에게서 치사하지만 과자를 얻어먹는 광경묘사, 동생의 시선으로 형의 심리를 차분히 읽어낸 점, 엄마가 등장하여 과자(빼빼로)를 사줌으로서 형에 대한 미안함과 굴욕을 무릅쓰고 빌붙어 얻어먹으려던 감정까지 일거에 무너뜨리는 감정의 복수(일부러 동그라미 앞을 지나간다. 손을 꼬옥 잡고)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일종의 반전이다.
그런데 과연 작가는 이 작품에서 유년의 기억을 그려 제목처럼 형제에 시선을 둔 이야기로만 끝맺으려 한 것일까. 단순하게 읽어도 한편의 수필로 그리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 싶다. 필자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을 논하고 싶다
이 작품이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 서정적인 수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서사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 골목풍경에 대한 묘사가 있어야 했다. 좀 더 선명한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 예를 들면 주변 풍경묘사나 가까이 있는 전봇대 모습이나 담벼락, 아니면 아이들의 표정, 골목대장의 인상이나 모습. 어머니의 의상 등 작가의 마음대로 취사선택해 그림을 그릴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작가는 일관되게 세밀한 묘사를 생략하고 동작이나 행위만 서술하고 있다. 이점이 작가의 의도된 구성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종화는 묘사력이 부족한 작가일까. 아니다 그의 작품 '여의도 서정'에는 화가 이상의 세밀한 시선이 있음을 필자는 익히 알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이 작품의 주 소재는 골목의 아이들, 골목대장, 형 그리고 동생인 작가, 그리고 어머니이다. 그리고 중요한 소품장치로 빼빼로가 있고 가게가 있다. 이 글을 사회적인 면에서 들여다보자, 작은 동네 골목의 대장은 일종의 권력(돈)이다. 아이들은 권력에 빌붙어 산다. 형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그 권력은 먼저 손을 내민 형이 아닌 동생을 선택한다. 나는 왜 안 되느냐고 형이 따졌지만 이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동생은 형을 슬며시 모른 체하고 동그라미(과자 맛의 유혹에 어쩔 수 없이)에 합류한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대리 묘사다. 아이들이 어울려 있는 동그라미를 회사라 쳐도 무방하겠다. 취직하려는 형은 안 되고 동생이 취직했는지도 모른다. 형은 '너라도 얻어먹으니 됐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라고 작가는 서술했다. 형을 이해하는 듯 했지만 작가도 형에 대해 확신 있는 답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형제인데도. 결국 동료라 해야겠다.
이 작품은 사회구조의 이유 없는 차가운 얼개를 그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때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형제에게 구세주다. 골목대장보다도 강한 존재다. 이 글의 내면적 배경을 좁게 해석하여 회사로 읽어 본다면 어머니는 큰 회사의 오너가 분명하다. 손목을 곽 잡혔다. 형제를 가게로 데려갔다. 동네에서 제일 큰 가게(큰 회사)로. 형제는 너무나 좋았다. 형은 더 좋았다. 같이 맛있는 빼빼로를 한 개가 아닌 한통씩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형은 ‘마딛지 마딛지’를 외치며 감격해 한다.
말미에 소시민 적인 아이들의 정신적 복수가 시작되는데 일부러 그 동그라미(끼려고 애쓰던) 앞을 지나 집으로 간다. 과자를 들고서 보란 듯이 두 손을 꼬옥 잡고.
이 작품은 작가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이용해 근무하는 여의도 직장의 얼개를 빗대어 표현한 것 인지도 모르겠다. 형제가, 동료가 더 큰 직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조직, 커다란 권력 앞에 처한 소시민의 심리를 형제의 모습을 통해 그려낸 작품으로 읽고 싶다. 문학작품은 작가가 의도 했던 아니건 더 많은 상상과 생각을 불러 일으켜야한다. 이 작품이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버금갈 사회의 모습을 속으로 그려낸 수필수작으로 읽히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수필도 수필만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면서도 독자에게 더 큰 그림, 숨어있는 커다란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 많이 양산될 때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뻔히 보이는 이야기는 감동이 없다. 곱씹어 생각할 거리가 있는 작품이 오래 기억되고 명수필의 반열에 오른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2012년 8월 이종화의 '형제'를 읽고 김형구
' 내 맘대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모습 (0) | 2013.12.11 |
---|---|
[스크랩] <에세이문학> 가을호에서 두 편의 작품을 읽고 (0) | 2012.09.25 |
[스크랩] 에세이문학 가을호를 읽고서 (0) | 2012.08.28 |
[스크랩] 이혜연 선생님 작품 `장미 세송이` 중에서 (0) | 2012.08.28 |
[스크랩] 에세이문학 봄호에서 한계주 선생님 작품 `설날 아침`을 읽고 (0) | 2012.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