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을 읽고
김형구
우리가 보통 글을 쓰려면 왠지 남이 읽어 '즐겁고 솔깃한 소재가 없을까' 떠 올리는 게 보통입니다. 거기에 커다란 감동, 깨달음, 큰 울림까지 염두에 두죠. 시나 소설,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씀들 하시겠지만 어찌하면 내 글이 독자에게 큰 감동을 안길까. 이런 고민 없이 글을 대했던 작가는 없지 싶습니다. 남에게 보여 지는 글이니 당연하지요. 해서 소재를 고민하고 제재를 선택할 때도 끝없이 번민하는 게 작가일 겁니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글감이 없다고 한탄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오늘 한계주 작가(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의 수필 '설날 아침'이 제 나름 글을 엮는 태도와 글을 읽고 난 감상이 작가와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 감히 느낀 점을 올려 봅니다. 물론 저를 비견해 글을 읽어주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작가의 글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설날 연휴의 일상을 소재로 글을 쓰셨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죠. 하지만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작가의 깔끔한 문장도 한 몫 했습니다만 또 다른 면이 보였습니다. 글이 친구나 동생뻘 되는 사람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듯 독자를 이끌어가는 문체입니다. 문체만이 중요한 게 아니겠지요. 한 문장 한 문장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와 닿는 작가의 솔직함이 느껴졌습니다. 즉 사유의 진정성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죠.
누구나 부러워할 자식들의 부모님에 대한 따듯한 사랑도 읽는 내내 자랑으로 와 닿지 않고 그 많은 여행이야기도 질투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고 집안 정리라든가 시의 날로 정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창작의 일상도 '팔자 좋으니까 하는 소리야'로 들리지 않는 문장력은 오랜 동안 글을 써 오신 노 작가의 역량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쉽게 일상을 소재로 글을 쓸 때 가장 잘 저지르는 실수가 읽는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미묘한 위화감을 주는 글입니다. 저를 비롯한 글 초보들이 저지르는 오류이지요. 이 글은 그런 느낌 없이 편히 읽히는데 앞에 말씀드렸듯이 작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진솔함이 글 전체를 받치고 있어서라 생각됩니다. 마치 그림에서 바탕에 깔린 색감이 그림 분위기를 기본 짓듯이.
다시 글 속으로 가보죠 마지막 문단인데 막내아들의 방문 소식에 어머니는 결국 자신만의 시간을 포기한 채 부엌일을 합니다. 전을 부치려다 친구 생각에 혼자 실실 웃는다는 문장 끝에 덧붙여
"엄니 밥" 책가방을 내던지며 하던 옛날 그 목소리. 언제 들어왔는지 막내가 등 뒤에 서 있다.
로 끝을 낸 마무리는 물론 작가라면 쉽게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글을 많이 써 오신 분 만이 할 수 있는 경지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엔 '실실 웃는다.' 뒤로 어떤 문장이 더 있을 듯 했지만 갑작스럽게 아들로 돌아가는 구성은 갑자기 들이닥친 아들을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살리는 작가의 노련한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호수에 물 찬 제비를 보는듯한 마무리랄까. 저는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이런 마무리가 없다면 이 글은 그저 평범한 작가의 인생관을 그린 평범한 일상의 글로 자리매김 되겠지요. 지나온 글 이야기를 일소에 부치며 어미와 자식의 관계를 굳이 설명 없이 한 문장으로 가슴에 와 닿게 표현하는 마무리, 이것이 문학이지 싶습니다.
하나의 장면을 표현하여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 이를 평론가들은 열린 텍스트라 하는가요. 그렇다고 이런 결미가 왕도는 아닐 겁니다. 작가나름의 구성이 있으니까요.
글 속에 세월을 담고 노년의 인생을 담담하게 토로한 삶의 자세가 글 속에 배어있어 이 또한 글을 읽는 재미였습니다. 이런 면은 작가의 의도는 아닐 겁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작가의 보이지 않는 힘이겠지요. 그래서 글은 작가의 그릇이란 말이 성립되는 가 봅니다.
좋은 글이 알게 모르게 작가를 살짝 들여다보게 만들어 독자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라면. 그런 면에서 '설날 아침'은 좋은 본보기라 생각됩니다. 특히 저같이 글공부를 하는 예비 작가들에게 하나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서도 훌륭한 글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말한다면 이런 글은 소설이나 시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이지 싶습니다. 물론 쓰고 구성할 수 있지만 이처럼 수채화 같이 담담한 아름다운 글은 수필의 영역인 것입니다. 수필에서 맵고 짜고 쓴 약 같은 느낌을 원한다면 산에서 숭늉 찾는 자세라 생각됩니다. 각박한 현실에서 진솔한 대화가 사라지는 요즘 글 한편이 이리 위안과 행복함을 주는 수필이야말로 앞으로 가능성을 담보한 문학의 한 장르라 믿고 싶습니다. 수필을 사랑하시면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수필이 문학의 미래 아닐까요.
에세이 문학 작가님들 앞에 겁 없이 주제넘게 쓴 글 용서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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