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수필

할아버지의 가을 그리고 겨울

칡뫼 2016. 12. 14. 07:59








        할아버지의 가을 그리고 겨울

                                                                                                                           칡뫼   김형구

                                                                                                                        kchicme1@hanmail.net


     내가 살면서 처음 만난 힘 있는 남자는 할아버지였다. 아버지가 계셨지만 당시 내 눈에는 할아버지에게 고분고분한 자식일 뿐이었다. 난 할아버지의 인생에서 보자면 여름이 끝날 즈음 태어났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봄날은 당연히 볼 수 없었고 여름도 빛바랜 결혼사진 한 장으로 살짝 훔쳐봤을 뿐이다. 결국 내가 본 것은 할아버지의 가을이었고 좀 더 크면서 겨울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릴 적 고향집은 안채와 행랑채, 그리고 사랑채가 붙어있는 "ㅁ"자형 한옥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랑채의 주인이셨다. 집안을 들고 나는 사람들은 사랑채 댓돌부터 살피고 볼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계시면 고양이 걸음에 목소리부터 낮췄다. 시끄러우면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어른에 대한 예우가 각별했던 시절이었다.

    자그마한 키, 농사일로 검게 탄 얼굴, 짧게 자른 머리에 수염을 기르신 할아버지는 담배를 즐기셨다. 겨울철 사랑방에는 질화로와 놋쇠 재떨이 그리고 곰방대와 담배쌈지가 놓여있었다. 화로에는 부젓가락이 있어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요긴하게 쓰였다.

     한복차림에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무릎 위에 팔꿈치를 기댄 채 곰방대를 피우셨는데 매운 연기 탓인지 늘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다. 물부리를 입에 물고 들숨을 쉬면 대통의 담배가 빨갛게 태워졌다. 그리곤 천천히 뱉어내는 날숨을 따라 온갖 근심과 회한이 연기로 사라졌다. 마치 명상에 든 사람처럼 반듯한 모습에는 가장의 위엄이 배어있었다.

      매미소리가 잦아들더니 시끄럽던 꾀꼬리는 늘어난 식구를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숲은 조용해졌고 가끔 박새가 눈치 없이 소리를 만들 뿐이었다. 산이 가을 기미를 챘나 싶었는데 어느새 나무는 울창했던 이파리를 맥없이 떨어트리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촌에선 땔감을 장만 하는 것이 큰 일과였다. 밥 짓는 일을 하거나 추위를 견디려면 아궁이에 불 때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가까운 산은 일찌감치 벌거숭이였다. 그래서 멀리 십여 리나 떨어진 골 깊은 '문수산'으로 나무하러 다녔다. 아침 일찍 낫을 두 자루나 갈아 놓았던 할아버지도 동네 분들과 나무하러 가셨다.

    해 질녘이면 멀리 '회나무재'에 지게 위에 나무를 가득지고 돌아오는 나무꾼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점점이 보이다가 그 수가 차츰 많아졌다. 출렁출렁 움직이는 나뭇짐은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말 탄 병사처럼 보였다. 가끔 나무꾼 뒤로 붉은 노을이 드리우기도 했는데 놀다가도 난 이 모습을 보면 집으로 뛰어가

    "할아부지 나무 해 가지고 오셔요"

두 번 세 번 소리쳤다. 할머니께서는 목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을 마중 보냈다. 하지만 지게를 지고 도착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고 할아버지셨다. 

     작은 체구였지만 할아버지는 힘으로 장사소리를 들으셨다. 남들은 지게에 나무를 세 동이 정도 얹어 오거나 조금 많다 해도 뒤에 한 동이를 덧붙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세 동이 뒤에 보통 두 동이를 더 달고 오셨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목수로 농사일이 서툴렀던 아버지는 지게를 넘겨받지 못하셨던 게다. 이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는 여름이셨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도 출가를 했다. 일 밖에 모르고 배움이 적었던 할아버지는 크고 작은 일에서 할머니에게 밀려나셨다. 이장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이치가 바르고 셈이 빠르신 할머니를 찾았다. 가끔 할아버지가 계시면 예의상 먼저 말씀을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이내 할머니와 상의 할 것을 권하곤 하셨다. 그 뒤론 할머니가 집안의 대표가 되셨다.

     할아버지는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로 그나마 체면을 유지하셨다. 논두렁 꼴 베는 실력은 마을에서 으뜸이셨다. 꼴 베어낸 논두렁은 이발한 듯 정갈하고 깔끔해 칭찬이 자자했다. 농사일에서는 아직도 가장의 권위가 살아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할아버지의 힘은 약해졌다. 아들, 딸, 며느리들도 할머니에게 의지했다. 모든 문제는 할머니 손에서 해결됐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에게 가을이 오고 있었다.

      집에서 조용히 일만 하시던 할아버지는 동네에 잔치가 있거나 초상이 나면 존재감을 술로 푸셨다. 잔치마당에선 춤을 추곤 하셨는데 좌중을 휘어잡는 춤 솜씨는 일품이셨다. 제자리에 선 듯싶다가도 이내 흐르는 춤사위는 여울물처럼 경망스럽지 않고 유장하여 강물 같았다. 어깨를 으쓱하고 태극문처럼 양팔을 상하좌우로 접어 펴며 허공에 툭툭 던지는 몸짓에는 손가락이며 발끝까지 힘이 실려 있었다. 가끔 신음하는 듯 낮은 소리를 춤사위에 얹곤 하셨는데 속울음을 우는 듯 흐느끼는 듯 슬펐다. 장고며 북장단에 춤사위는 이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술 사발과 함께 멍석에 쓰러져 주무셨다. 붉고 화려해 보였지만 할아버지의 늦가을은 그렇게 와 있었다.

      취한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 일도 점점 힘들어졌다. 취하시는 정도가 심해 어린 나로서는 감당키 어려웠다. 아버지나 식구들이 나서야 했다. 집에 와서는 주무시지 않고 손자들을 불러 앉혀놓고 말씀이 많으셨다. 주로 조상님 이야기였다. 조상이야기로 가장의 힘을 보여주고 싶으셨을까. 할아버지의 말씀은 점점 길어졌다. 하지만 긴 이야기에 진저리를 내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말씀이 적어지셨다. 이후 먼 산을 바라보거나 마당 옆 커다란 참나무를 올려다보며 눈을 훔치곤 하셨다는데 늙는 게 서러우셨을까. 어린 나는 눈병이 나신 줄 알았다. 서서히 겨울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식구들이 할아버지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대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채에 손님이라도 들면 술상도 반듯하게 차려냈고 자식들도 깍듯했다.

       참나무도 은행나무도 아까시나무도 모두 알몸이 되었다. 숲은 회갈색 얼굴을 한 채 차갑게 굳어있었다. 전깃줄은 밤이면 기괴한 소리로 울어댔다. 윗마을 저수지는 쩡하고 얼음 터지는 소리를 토해냈다. 잠을 잘 때면 웅크린 몸이 더 오그라들었다. 겨울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잦았다.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읍내 정류장에서 가게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장날이면 이발을 할 겸 읍내에 가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술을 자셨다. 대취하면 작은 아들네 가게에서 주무셨다. 그럴 때면 작은 아버지는 꼭 동네로 가는 사람에게 ‘아버님이 아들네서 주무시고 간다.’는 기별을 띄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기별도 없고 늦은 시간인데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낮에 내리던 싸락눈이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짧은 해에 날이 저물어 어느새 밤이 되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식구들은 초조했다. 고모와 내가 나가보았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동구 밖에 멀리 사람이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할아버지 걸음새는 아니었다. 막차에서 내려 동네로 돌아오는 윗마을 아저씨였다. 여쭤보니 기별도 없었고 가게에는 작은 아버지 혼자였단다. 그렇다면 술을 드시고 돌아오는 길에 실종 되신 게 분명했다. 큰일이었다. 날은 춥고 여전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섰다. 나도 할아버지를 부르며 읍내 길을 되짚어 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 만에 큰 길에서 동네로 들어오는 길, 깊은 두렁에 할아버지가 쓰러져 계신 것을 아버지가 발견했다. 온통 눈 세상이라 길을 잘못 짚어 빠지신 것이었다. 몇 차례 나오려고 애를 쓰셨겠지만 술기운에 허사였다. 입고 계신 흰 두루마기는 눈처럼 보였다. 길 지나던 사람 눈에 띄지 않은 이유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업고 집으로 내달았다. 사랑채에 이불을 펴고 몸을 주무르고 더운 물로 얼굴과 발을 씻겨 드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할아버지는 그나마 남아있던 가장의 권위가 더 손상되고 힘을 잃으셨지 싶다. 수척해진 몸에 더욱 말수가 적어지셨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그해 겨울은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할아버지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몇 해 뒤 물꼬를 정리하다 쓰러져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결국 가장의 마지막 자존심을 농사일로 지키셨던 것이다

     지난번 할아버지 기제사 때였다. 고모를 비롯해 식구들이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만 하시다 돌아가셨어"

     "참 선하게 사셨는데" 

     남자는 일로 가족을 사랑한다. 돌아가신지 언 사십 여년, 겨울지나 봄이 오듯 할아버지의 겨울은 남은 가족에게 그리움을 남겼다. 새싹처럼 그리움으로 되살아나는 할아버지는 진정 힘 있는 가장이셨다. 오늘따라 먼 산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 훔치시던 할아버지가 마냥 그립다. 

 

                    <에세이문학>  겨울호 계절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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