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생각

진눈깨비 내리던 날

칡뫼 2020. 2. 16. 17:12

새벽에 내려와

작업실에 앉아 있다

창밖에는 진눈깨비가

분분하다. 심난한

날씨 탓인가. 쓴 웃음과 함께

옛일이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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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시절이었다. 사업이 기울자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거기에 발행한 당좌수표의 부도로 수배자 신세가 되었다. 도망 다니며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나에게 세상은 어두운 먹색이었다.

 

집을 비운지 석 달째, 가족이 그리웠다. 밤늦은 시간, 그간의 사정도 알려줄 겸 달빛처럼 집에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고 놀란 아내가 눈물로 차려준 밥상을 받고 있었다.

 

“계십니까, 김ㅇ구씨 계십니까.”

 

바깥 대문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밥 먹던 숟가락을 든 채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계세요, 파출소서 나왔는데요.”

 

“아무도 안계세요.”

 

“탕, 탕, 탕”

 

대문 두드리는 소리만큼 가슴도 쿵쾅댔다. 내가 집에 들어온 것을 알았단 말인가. 초인종은 전부터 고장 나 있었는데 채권자들이 들이닥칠 것 같아 고치지 않았다.

 

“아무도 안 나오네요, 넘어 들어가 대문 딸까요.”

 

목소리를 들으니 한 명은 젊은 경찰관 같았다. 마당 끝에 있는 대문은 높지 않아 남자라면 쉽게 넘을 수 있었다. 낯빛이 하얗게 질린 아내는 순간, 나에게 가만있으라는 손짓을 하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대문으로 향하는 아내의 발걸음 소리가 시한폭탄 초침소리처럼 들렸다. 입이 바짝 타들어갔다. 숨이 가빠왔다. 부엌문을 열고 뒷집 담을 넘을까도 생각했으나 잘못됐다간 동네에 이상한 소문만 키울 것 같았다.

 

“누구세요?”

 

아내의 음성이 떨렸다.

 

“네, 파출소에서 나왔는데 김ㅇ구씨 계십니까?”

 

“우리 그이요? 집에 안 들어 온지 석 달 짼데요.”

 

“네. 혹시 어디 계신지 모릅니까?”

 

“저도 몰라요. 애들도 지 아빠 찾고 난린데”

 

“잠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경찰관의 말에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잡히면 끝장이었다. 사업의 뒷수습도 못하고 결국 파산의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했다. 현관의 구두를 감춰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미 몸은 얼음처럼 굳어있었다.

 

“뭐라구요? 야밤에 여자 혼자 있는 집엘 들어온다고요?”

 

실랑이가 벌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좀 전에 담 넘으려 하셨죠? 아저씨, 민주경찰 맞아요?”

 

아내가 일부러 격앙된 목소리로 따지고 있었다.

 

“아, 네에, 그만 됐습니다. 바깥어른 오시거든 이리로 연락주세요, 저희가 도와 드리려는 겁니다.”

 

경찰관들은 연락처를 내밀고 사라지는 모양이었다.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장면이 바뀌고 식탁에서 떨고 있던 도망자 곁에 여주인공이 있었다. 그녀의 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명함 한 장이 전리품처럼 들려있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여리고 눈물이 많은 아내에게 저런 모습이 있다니. 아내는 자기 새끼를 지키기 위해 커다란 사냥개 앞에 버티고 있던 ‘투르게네프’의 참새였다.

 

다음날 새벽, 미리 골목 동정을 살피고 온 아내와 이별을 했다. 힘껏 껴안아 준 아내의 눈이 돌아선 나의 등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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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가정을 꾸릴 수 없었던

나는 자그만 사업을 했는데

번창했으나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것을 수습하느라

10여 년을 자본의 충실한 노예로

살았다. 단 하루도 휴일이 없었다.

다행히 그림을 다시 시작 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와는

졸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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