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연인’
내가 사는 집, 안방에는 글, 그림이 여섯 점 걸려 있다. 작품이 여섯 개나 있으면 방이 무척 크다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작고 보잘 것이 없다. 작은 방 일수록 벽에 그림이나 사진이 있으면 방을 크게 느끼며 살 수가 있다. 그림에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풍경화가 걸려 있으면 바로 앞의 벽도 멀리 수십 리 풍경이 보이는 뚫어진 창이 된다. 방에 있는 글, 그림 여섯 점 중 아끼는 그림이 있는데 '연인'이란 작품이다.
시골서 공부를 곧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는 일찌감치 서울로 전학을 와서 이모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어린나이에도 농사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길은 오직 공부를 잘해서 소위 명문대 입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잘한다고 인정했던 그림 그리기는 취미로 치부하며 멀리 했었다. 그런 행동에는 '화가는 가난하고 고생한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한 몫 했지 싶다. 시골에서 잘한다던 촌놈 공부는 과외와 전과나 수련장에 단련된 서울 아이에 비해 열등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로 한 대학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재수를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1년을 더 공부하고도 원하는 학교를 가지 못한 나는 눈물의 일기장에 대학을 포기한다고 썼다. 칭찬을 밑천으로 거침없이 달려온 나에게 처음 겪은 커다란 좌절이었다. 큰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잘한다. 나의 실패는 하늘이 준 재능을 쓰지 않으려고 한 죄 값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 군 입대 영장이 나왔다. 더는 진로를 논할 입장도 되지 못했다. 결국 군에서 제대하면 화가가 되기로 작정하고 틈나는 대로 미술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전역하는 사병의 얼굴초상도 그려주면서 데생실력도 쌓았다.
제대하고 맞이한 80년대는 사회적으로나 나 자신에게도 암울한 시절이었다. 화가가 되기로 작정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먹고 살기가 막막했다. 취직을 해 봤으나 능력이나 학력學力이 아닌 학력學歷이 곧바로 급여의 차이로 연결되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재수 삼수 오수를 하면서 대학을 가려 하는구나. 진정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액자를 만들어 주는 표구사를 차리고 낮엔 일하고 밤에 그림을 그렸다. 실력을 닦으려고 벼루와 먹을 들고 전국을 돌며 스케치여행도 다녔다. 많이 보고 많이 그리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도였다. 전시회란 전시회는 모두 발품을 팔았다. 멀리서도 그림만 보면 누구 그림이며 어느 시절 작품인지도 알아볼 정도였다. 젊은 열정만이 재산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그림 세계에서도 차별은 있었다. 학연 지연이 없는 독학의 무명화가에게 정보도 없었으며 전시공간은 높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작품을 공모전에 출품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 그림이 걸리는 행운도 얻었지만 괜스레 서럽던 시절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소시민과 소외된 노동자에 관심을 가진 작품들은 팔리는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철조망, 녹슨 대문, 찌그러진 가드레일, 상처 난 벽, 늙어 주름진 얼굴의 노인, 공사장 등이 그림의 소재였다.
현실의 모습은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였다. 나에게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그림은 왠지 거짓말 같이 보였다.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지 때문이었다. 시절이 어수선하여 전시도중 동료화가들의 그림이 압수되기도 했다. 소외되고 경쟁에 밀려난 자는 항상 나와 동격이었고 그런 모습은 모두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이런 세월을 보내던 나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나를 이해해 주는 아내를 만난 것이다. 그 시절 탄생한 그림이 바로 "연인"이다.
그림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림 아래쪽에 가게 앞길, 다정하게 어깨를 껴안고 걷는 연인의 모습이 있고 길 건너에는 삼, 사층 됨직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기다란 전봇대와 전깃줄이 이리저리 늘어져 있는 부감시구도의 밤경치 그림이다. 바로 내가 일하던 화실 겸 가게가 있었던 공항동 시장 풍경이다.
지금 보아도 이 그림은 사랑이 충만할 때 사랑을 그렸으니 당시 마음이 묻어난 작품이 분명하다. 어두운 밤이지만 창문의 붉은 빛은 가슴의 열정이었고 건물의 굼실거림은 설렘의 표현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축복하는 듯 춤추는 것으로 보였다. 가난한 동네의 전신주는 어둠속에서 무거운 짐을 힘겨워 했지만 연인에게는 꿈과 희망이 가득하던 골목길이었다. 두 사람에게 순대 파는 가게, 족발집, 튀김집 ,분식집 등은 그 어떤 고급스런 카페보다도 아름답고 행복한 장소가 되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습작시절을 제외하고 어둡고 탁한 소재를 즐겨 그려오던 내가 서정적 분위기로 짧은 시간에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지금 다시 보니 밤 골목길 그림의 시발점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삶이 답답하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순수했던 감정과 작품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난다. 자그만 밤경치 그림이지만 거울처럼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세상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았던 마음을 선물하는 존재다. 그림은 배우는 게 아니고 터득이라며 스승 없이 홀로 살아온 나에게 내 그림이 오늘도 나를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뜨겁게 사는 게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고.
연인 1984년작 28 x 42 cm 화선지 수묵담채 칡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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