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나는

칡뫼 2015. 10. 27. 06:25

 

 

 

 

                          최영애 작가의 '젊은 작가 클릭클릭'을 읽고 / 김형구


 

 

 

     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여행은 새로움과의 만남이죠. 그래서 늘 설렙니다. 글 읽기도 여행의 하나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잘 모르는 세계나 잘 아는 곳 일지라도 작가의 색다른 시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가을 글 읽기 여행에서 최영애 작가를 만났습니다. 에세이문학 가을호 젊은 작가 클릭 클릭에서입니다. 솔직히 예전에 그녀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네요. 어쩜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간행물에서 작가를 기억해 내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실린 작품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4편을 읽었으니 한 작가의 작품을 모아 읽기는 개인 수필집을 대할 때 외에는 드문 일입니다. 나름 감상평을 써 봅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수필은 전반적으로 쉽게 읽혔습니다. 논문이나 역사서, 혹은 과학서적보다 쉬웠죠. 그래서 일까요. 수필을 읽고 나면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수필은 편하고 따듯하게 읽히는 글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최영애 작가의 글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수필과 결이 다릅니다. 작가의 특징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선하지만 분명 어렵게 읽히는 면이 있었습니다.

          

 

      4편의 작품이 모두 스토리 중심이 아니고 어떤 상황을 들여다보며 생각의 흐름을 쫒는 글입니다. 생각은 물질과는 다르게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세계입니다. 상상의 세계이며 환상이며 꿈입니다. 작가는 이런 점에서 일반적인 사건이나 이야기 중심의 글과는 다른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사물을 파고드는 기존 대상수필과도 달라 보입니다. 순서에 관계없이 작품의 느낌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작품 <사람책>은 카메라가 도서관을 비추며 마치 작가가 영화감독인양 글을 끌고 가는 독특한 구조의 글입니다. 신선한 작법으로 다가왔습니다. 카메라는 허공을 넘어 도서관을 클로즈업합니다. 재능기부자가 보이고 그들을 사람책으로 봅니다. 다시 중고서점으로 시선을 유도한 작가는 일반 책을 보여줍니다. 누군가 보았던 책 피천득 선생의 <인연>에 써 넣은 혜존惠存이란 글씨를 보고 자신의 과거 기억을 살려냅니다. 그렇지만 감독답게 더 이상 개인사에 대한 관심은 자르고 다시 사람 책으로 독자를 이끌고 갑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아버지책, 어머니책으로 연상합니다. 제때 읽고 또 읽어야 할 ‘휴먼북’이라고 정의도 내리죠. 마지막 문장이자 엔딩 자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네요.

“영원히 곁에 두고 싶은 책. ‘사람책’ 가끔 꺼내 봅니다.”

감동적인 귀결입니다.

       

 

     이 작품은 글의 구조를 다양한 시점으로 엮어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생각의 징검다리를 넓게 놓아 어렵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상시 열람 가능한 책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한참동안 영정사진을 이야기 하는 줄 모른 체 글을 따라갑니다. 흰 장갑을 낀 채 가만히 쓸어내리는 것도 일반 책으로 상상하죠. 그 다음 바로 아버지책으로 건너뛰는 문장도 어렵습니다. 실제 책인지 실존 아버지인지, 아버지의 존재를 상징한 영정사진인지 구별 못하죠. 뒤에 아버지 행적을 복권하려는 행위를 읽기 까지는. 즉 독자는 어디가 현실이고 어느 부분이 상상의 세계인지 명확히 구별하지 못한 채 글을 따라가다가 결미에 이르고 말죠.

 

 

     다른 작품 <가을 별자리 여행>입니다. 내시경을 들여다보는 과정의 글에 작가의 사유가 잘 녹아난 수작입니다. 장기의 모습과 위나 대장의 벽에 난 주름과 상처에 인생과 삶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이죠.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글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글이 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세 네 문단이 지나도록 미지의 탐험인지 내시경을 들여다보는 과정인지 그 구별이 선명하지 않아 이해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즉 작가는 내용(내시경 시술)을 알고 썼지만 독자는 모르는 경우죠, 잘 아는 골목길을 유도하는 아이(작가)와 처음 골목을 가보는 아이(독자)의 차이 일 겁니다. 독자는 하나의 사실을 상상하고 가는데 갈수록 암호문 같은 문장을 만나는 꼴이 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첫 번째 문장에서 ‘탐사가 시작된 모양이다.’에서 독자는 제목(가을 별자리 여행)과 연상되어 우주를 탐험하거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상상하죠. 그런데 ‘나의 입에 뭔가를 장착한다. 복장 한 번 제대로 여미고 옆으로 들어가기 좋은 자세를 취한다.’ 문장은 내시경 시술 때 취하는 자세인데 우주탐험이니 미지의 세계를 상상한 독자는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죠. 마냥 궁금한 채 막연히 글을 따라 갑니다.

           

 

      이어 뒤에 나온 이집트여행 이야기에서도 미지의 세계, 혹성탐험을 상상(제목 때문에)하지 내장의 벽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와 닿지 않습니다. 물론 작가는 그런 의도로 썼는지도 모릅니다. 다섯 번째 문단에 와서야 살짝 뱃속이야기가 등장하고 여섯째 문단에 이르러 내시경이란 구체적 단어가 나오고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제가 독해력이 부족한지 모르지만 이렇게 안개 속을 오래 헤매게 하면 글이 어렵다고 생각하며 책을 손에서 놓고 마는 게 일반적이죠. 독자는 이제 친절한 작가를 원하는 세상입니다. 두 번 세 번 읽어야 이해되는 글을 원하지 않죠.

          

 

      거기에 비해 <토르소의 몽상>은 의인화법을 사용하여 작가의 사유를 풀어낸 수작입니다. 팔다리가 잘린 조각품(토르소)이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역설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읽었습니다. 기둥 하나에 받쳐져 있는 조각품 토르소,

     ‘발가락 끝에 전해오는 이 느낌, 그것은 통증일까 전율일까.’

글에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 결국 가장 단순한 원형질이야 말로 삶의 근원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의 넒은 생각의 폭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쉽다면 토르소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토르소의 형상을 미리 알려주는 친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기억을 파는 가게>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디지털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읽었는데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시대는 기억을 저장하지만 순간 쉽게 날리는 기억의 잔혹사라는 발상이 신선했습니다, 우리가 디지털 전화기가 생기고 집 전화번호나 아이들 전화번호를 기억 못하는 경우가 생각나 공감이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기억의 소중함에 깊은 애정을 보입니다. 달리의 그림 <끈질긴 기억>처럼 지친 시계 하나 걸터앉을 공간하나 만들어주고 싶다하네요. 어느새 우리는 디지털 유목민이 된지 오래입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 못하고 떠도는 존재죠. 지나온 과거를 쉽게 지우고 잊는다 할까요. 하지만 저장기능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끄집어 낼 수가 있는 것이죠.

     ‘기억을 사고 싶습니다. 어떤 기억을 사고 싶으세요.’

이렇게 글이 마무리 되면서 작가의 기억에 대한 사랑 여행은 끝이 납니다.

        

 

   이상 4편의 작품을 대하며 이미지를 파괴하거나 상징화하여 나름의 감성과 사유로 공간을 채우는 현대미술작품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담백한 수채화를 기대한 독자에게 당혹감을 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사유의 폭이 넓은 작가를 만난 기쁨이 컸습니다. 개성 있는 글의 결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수필계도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영애 작가 같은 개성 있는 글쓰기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렵게 다가왔지만 자신의 세계를 그려가는 좋은 작가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끝으로 모든 다양성에서 필요한 귀결, 작품이 갈 길은 여전히 머리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만의 생각일까요.

      

 

   작가는 이런 말을 하셨네요.

‘시간이 지나면 위계의 질서를 잡고 내 것처럼 밀착되는 글, 그 글들이 이제 나를 찾아오는 날은 있기나 한 걸까.’

분명히 있을 겁니다.

                                                    <2015년에세이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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