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에세이피아 겨울호에서

칡뫼 2017. 1. 15. 10:20



   에세이피아 겨울호에서


     매달 집으로 달려오는 책이 꽤 됩니다. 여러 권의 수필집, 미술잡지 그리고 전시 리플렛을 비롯해 가끔 읽겠다고 주문한 책까지. 물론 제대로 읽지 못하죠. 괜스레 바쁘고 그림 그리고 돌아와 읽어야지 하다가도 전화기 속에 빠져 페이스북에 답글 걸고 카카오톡 확인하고 지쳐 이내 잠들곤 합니다.

      오랜만에 앉아 에세이피아를 열어봤네요. 다행이 책이 얇아 부담이 없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전 두 작품에 눈이 갔습니다. 원주에 사시는 장현심 선생님의 ‘모닥불을 피우며’와 왕린 씨의 작품 ‘흔들리는 밤’이었습니다. 둘 다 불꽃에 대한 글이어서 읽고 나니 할 말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장현심 작가의 글은 산중생활에서 모닥불을 가까이 하며 생활 속에서 느낀 단상을 녹여낸 수작이었고요. 왕린 선생의 작품은 인터넷 카페에서 사귄 남자들과 여의도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가서 느낀 마음을 그려낸 작품이었네요.

   

     ‘모닥불을 피우며’는 역시 장현심 작가다운 글이었네요. 그동안 봐 왔던 작품처럼 내공이 보이고 짜임새가 확실한 교과서 같은 수필 한 편 이었습니다. 빈틈이 별로 없고 구성 또한 정확한 글입니다. 산중에서 살며 모닥불을 피우게 된 사연과 나무타는 모습을 잘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었네요. 작가라면 누구나 사물에 대해 깊이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이 글에서도 느끼게 합니다. 감동은 깊이에서 나오는 필연의 결과니까요. 수필작가들이 배워야할 점일 겁니다.

      자연스런 도입부와 모닥불의 재료인 상수리, 소나무, 아까시나무, 박달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등의 불에 타는 모습으로 사람과 삶을 비유한 글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작가의 글 수련이 깊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꽃이 까무륵 꺼지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생을 마치는 사람을 보는 듯 하다라며 결미를 짓습니다. 수필이 성찰의 문학임을 증명해 줍니다.

      

            왕린 작가의 작품으로 가보죠. 제목에서 보듯이 '흔들리는 밤'은 일단 글속에 작가가 녹여내고자 하는 바를 설명해 줍니다. 중년의 두 남자와 한 여자. 가상의 공간에서는 가깝지만 결코 만난 적도 없던 세 사람이 약속을 하고 만났습니다. 그곳에 불꽃놀이가 있었죠. 낯선 만남에 대한 서먹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잘 그려낸 글입니다.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나 순간 침묵이 흐른다던지 쓸데없이 맥주잔에 신경을 돌리거나. 그리고 작가는 글을 끌고 가다가 정점에 이르러 반문합니다. 언제 불꽃처럼 환해 본 적 있느냐 언제 저렇게 불같은 마음을 상대에게 줘 본적 있느냐고.

       그러면서도  작가는  다시 말합니다.  '흔들릴수록 마음의 꼭짓점을 움켜쥐고 딱 그만큼의 각을 유지하고 앉아 흔들림을 즐긴다.'라고. 자신의 현재에 대한 자리매김이죠. 결미에 이르러서는 불꽃놀이를 본 마지막 사유로 형체 없이 사라질 꽃이라서 더 흔들리는. 그게 인생이라고. 인생이 아니겠냐고 반문하죠. 여운있는 글입니다.

    

       두 작가의 글은 불꽃을 소재로 다뤘지만 맛이 틀립니다. 수준 또한 높았고요. 좋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수필의 현주소를 보는 듯도 했습니다. 아쉽다면 전작은 알게 모르게 교과서 적인 냄새와 방정식을 잘 푼 모범답안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요. 후작은 어딘지 넘고 싶지만 넘지 않고 지킨 몸 사린 표현이 글의 찐한 감동을 도리어 제어한 맛이 있습니다. 삶은 언제나 미완성이듯 글 또한 그럴 겁니다. 두 글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어찌 표현 하는 게 좋을 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필이 참 솔직한 고백의 글이지만 실제 자신을 얼마나 투영하는 글을 쓰는가. 살짝 숨어서 나를 잘 보여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수필의 어려움일 겁니다. 소설은 허구라는 장치로 숨을 수 있어서 역설적으로  자기의 진면목을 끔찍하게 드러내는데 정작 우리는 그러한가. 찐한 감동은 어디에서 올까. 잔잔한 감동과 진한 감동의 차이는 뭘까.


      불꽃처럼 사라질 인생 여러분 불은 얼마만큼 타고있나요. 새해에는 더욱 화려하게 활활 타오르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불꽃이 남긴 잉걸처럼 오래도록 뜨거움을 남겼으면 합니다.

  부끄럽지만 독자로서 한마디 적었습니다. 새해 인사에 대신합니다. 복 많이 지으세요. 감사합니다.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  칡뫼 김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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