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 칡뫼
눈이 하얗게 내리면
이 나이에도 가슴이 설레는 건
토끼 쫒던 어린시절 그리워서 아니고
첫눈 오면 만나자던
철부지사랑 생각나서 아니며
눈 길, 아줌할미 뛰뚱아장 어린애 되는
동화같은 일 때문도
봉창封窓 밝아 늦잠잔 줄 안
놀란 새각시 얼굴 떠올라서도 아니다
또한
지난 봄 흐드러져 날리던 백매白梅본 듯 해서도 아니다
방법 모른체 열심히 그린
답답하고 빈틈없는 못난 인생살이 한 폭
하얗게 눈이 내리면 가슴떨리는 이유는
너무 촘촘하고 박해서
가난한 마음과 어두운 세상에
꽁꽁 언 저수지에 뚫린
물고기 숨구멍처럼
가슴 따뜻한 여백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산다는건 어쩜
지울수도 없고 덧칠할수도 없는
문인화文人畵한점 그리기
오늘도 나는 아무도 가지않은
화선지畵宣紙같은 하얀 눈위에
커다란 황모필黃毛筆 닮은 댑싸리비들고 길을내며
지울수도 덧칠할수도 없는
나만의
먹선墨線을 그어나간다